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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미동] 일관 혹은 변화의 독립다큐멘터리 5인5색전, 3탄 '박종필 감독전'


10년 동안 노숙인을 찍어오게 된 이유 - '실직노숙자'에서 빈민활동가까지




다큐멘터리스트들 중에는 하나 혹은 연관된 두어 개의 주제를 일관되게 추적하며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박종필 감독도 그 중 하나인데, 98년도의 첫 작품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 - 실직노숙자>부터 그는 노숙인에 대한 관심을 지속 심화시키면서 2007년 <거리에서>까지 만들었다. (그의 관심 주제에는 장애인에 대한 것도 있는데, 노숙인과 장애인은 운동의 대상에서 당사자로 명확하게 자리매김하는 역사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IMF 구제금융은 한국 사회에 쓰나미 같은 파장을 몰고 왔다. 하기 쉬운 말로 위기는 곧 기회라고, 수렁에 빠질수록 오히려 성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실직노숙자>의 첫 장면은 강렬하다. 태극기를 두른 초라하게 주저앉은 남자의 뒷모습. 술 취해서 흐트러지는 발음으로 “한국 사람이니까 태극기를 둘렀다”고 말하는 그 남자의 짧은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국민으로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잘 살 수 있다는 신화의 허상을, 국가가 신화를 조장하며 개인을 착취했지만 결국 개인의 생존을 방기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실직노숙자>는 사회과학자의 눈으로 근대화의 허상과 현재의 실瓚?분석하려 하지 않고, 노숙자로 전락하여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형들의 개별적 사연을 들어주는 청자로서 접근하고 있다. 노숙자들이 모여서 텐트를 치고 기거하고 있는 서소문공원에 찾아가 함께 숙식하고 목욕하고 대화하며 촬영한 것이다.

그러나 화면 속에서 감독은 분명히 노숙하는 형들과 구분됨을 숨길 수 없었다. 웃옷을 벗으며 노숙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지만 형들의 부어오른 얼굴과 그을린 등과 어깨들 사이에서 하얀 몸뚱이는 이질적이었다.

사회의 시간은 흐르고 노숙의 시간도 흘렀다. <거리에서>의 제작년도는 07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촬영은 98년도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작품은 <실직노숙자>를 촬영할 때 만났던 형들이 어떻게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즉 노력과는 상관없이 거리를 벗어날 수 없었던 현실과 지속되기 힘든 관계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 축과, 노숙인주말배움터를 중심으로 노숙인들이 당사자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현실을 직접 변화시켜보겠다는 의지를 어떻게 구체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챘겠지만, 이 글에도 노숙자와 노숙인이라는 용어가 혼재되어 있다. 감독도 노숙인을 처음 만났을 때는 ‘노숙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딱 그때뿐, 이후로는 줄곧 노숙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가 노숙인을 규정하는 방식의 변화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감독이 노숙인과 맺고 있는 변화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거리에서>에서 감독은 ‘덜’ 이질적인 인물로 노숙인들과 한 장면에 어울려 등장한다.

그것은 두 개의 작품을 위해 두 번의 집중적인 접점이 있었다면 생길 수 없는 변화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게 되면 - 작품의 개수와는 무관하게 - 작품에 반영되는 감독의 시선과 위치가 변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실직노숙자>와 <거리에서>에서 10년 동안 변하지 않는, 아니 더 나빠지기만 하고,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나빠진 도시빈민의 삶을 목도하는 일은 참 고통스럽지만, 그 안에 보이는 감독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일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10년 동안 노숙인을, 그것도 유독 카메라에 거부 반응이 강한 노숙인들을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그 동안 노숙이 계속되고 있으며 거리의 삶을 강요하거나 위태롭게 만드는 사회의 해약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나레이션처럼 “형들의 얘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청자로서의 그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노숙인이라는 자장 안에서 감독의 위치는 크게 달라졌고, 그는 노숙의 이야기들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그 주제를 앞으로도 계속 잡고 갈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이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