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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은 흐른다

김성환 | DV | 1999 | 78분 | 다큐멘터리


조연출/구성: 류미례
음악: 김동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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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주인공 안문모씨는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에서 77세의 어머니, 79세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39세의 노총각이다. 제장마을은 '수달동굴'과 깎은 듯이 아름다운 절벽 때문에 TV에 자주 나오는 곳이다. 세 집만 사는 작은 마을에 사는 안문모씨는 그 곳에서 5만평이 넘는 땅을 일구며 사는 농사꾼이다. 그 중 1만평은 자기 소유이고 4만평은 외지인 소유이기 때문에 도지를 주며 땅을 부친다. 천식으로 몸이 불편한 아버지 안성애씨는 주로 누워계시고 농사일과 집안일은 안문모씨와 어머니(신춘선 씨)가 맡는다. 어머니는 영월서 장사를 하다가 농사를 지으러 들어온 후 35년간 제장마을에서 살아오셨다. 감독은 봄부터 안문모씨의 농사를 도우며 안문모씨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한다.

This film captures 1 year of sudden change in life of An Moon-mo’s family. They have been living for decades nearby Dong river, but the construction plan of Yeongwol Dam changes their life. An Moon-mo is a single man of 39 years old lives with his 77-years-old mother and 79-years-old father in Jejang village, Deokcheon-li, Sindong-eup, Jeongseon-gun. Jejang village is often seen in TV programs because of the famous ‘Sudal cave’ and picturesque cliffs. There are only 3 families living in the village. An Moon-mo is a farmer who works more than 50 thousands pyeong(over 40 ha) of the fields. 10 thousands pyeong belongs to him but the rest are belongs to a person in other city to whom he pays for the fields. His father Mr. An Seong-ae suffers from asthma so An Moon-mo and his mother Sin Choon-seon are in charge of all household chores and field works. His mother had been in business in Yeongwol, and then came to Jejang village for farming 35 years ago. The director has been staying with An Moon-mo’s family helping field works since last spring.


View Point
동강변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안문모'씨 가족이,
영월댐 건설계획으로 인해 겪는 변화와 아픔을 1년의 시간 동안 담은 작품.


Production Story - [연출의 변] 카메라 밖으로, 사람 속으로

97년말경 작은 고민이 있었다. 두개의 기획을 놓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영화를 계속 만드려고 하는 나로서는 행복한 고민이었다. 하나는 인권영화제 준비를 같이 하면서 떠오른 성폭력을 주제로 한 극영화였고, 다른 하나는 동강에 대한 기록영화였다.

본래 나는 극영화를 하고 싶었다. 대학 시절부터 영화동아리에서 꾸준히 나름대로 영화를 만들어왔고 졸업 후에도 뜻 맞는 사람들과 합심해 제작집단을 만들어 활동해 왔었다. 그래서 당연히 극영화를 해야겠다는 판단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을 채울만큼 나의 글쓰기와 진지함은 따라주지 않았다. 아니 마음은 이미 딴 곳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기록영화를 하는 선배로부터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기록영화를 하면 그만큼 인물 고유의 깊이를 알게된다는 것. 극영화를 하려고 하면서 인물을 창출하려고만 했던 나로서는 이 사실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인물설정에 많은 한계를 느끼고 있던 때라 그 한마디는 나의 목마름을 적셔줄 정수가 되고도 남았다. 그래서 되지도 않는 시나리오를 붙들고 있기 보다 기록영화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따를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에 다큐멘터리 제작집단인 푸른영상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때가 97년 12월이었다.

동강의 소식을 들은 건 내린천댐 반대운동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부터다. 그리고 그 동강이란 곳이 내가 가본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동강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 수준을 넘어서서 한편의 영화가 될 수 있도록 PC통신, 환경운동연합을 방문하며 자료를 모으고 댐 건설 예정지역인 영월로 답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강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혼자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나는 제주도로 4박 5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 나의 모습에 한 친구는 '흘'이라는 애칭을 지어주었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사람이 되라는 이유를 달아주며.... 친구의 마음이 담긴 이름을 받아들고 그 이후로 나는 '흘'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어쩌면 <동강은 흐른다>라는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 이름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영월댐을 찬성하는 수몰예정민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모형과 할머니의 생활 속에서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수몰예정민 이전에 농민이었다는 당연한 사실에 도달하게 되었다. 동강지역 농민들에 대한 어떠한 정책적 배려나 댐계획에 대한 설명없이 일방적으로 댐계획을 발표하고 온갖 투기꾼, 묘목상들, 군 관계자들, 농협 등에 의해 동강지역이 시기와 일그러진 기회의 땅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가 분위기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댐을 찬성하는 농민들을 등에 업고 댐건설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행위를 보면서 과연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인가, 환경인가 그 문제가 선택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동강의 현실은 나를 괴롭게 했다.

내가 처음의 생각대로 '영월댐 반대'의 입장만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다면 아마 난 진실된 이야기들을 모른 채 지금까지 흘러왔을 것이다. 다행히 숨김없이 모든 걸 말해주겠다는 문모형을 만났고 문모형과 할머니 그리고 가족분들을 통해 마음도 함께 열린 것이다.

기록영화를 하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나선 나로서는 많은 반성의 시간들이었다. 나는 단지 카메라로 찍기만 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대상이 흔들리고 술렁일 때 함께 흔들리고 술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작업이며 과연 나는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되물음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방관자, 관찰자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관찰자는 모든 현상에 대해 스스로의 생각대로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주장하기는 힘들었다. 촬영을 포기하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문모형과 술만 자꾸 마셨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찍는다는 것이 세상의 문제에 아무런 책임없이 너무나 편하게 관여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더우기 문모형과 할머니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더욱 힘든 일이었다.

내 생각의 껍데기를 하나 하나 벗겨 나갔다. 나의 얄팍한 생각을 앞세워 무언가를 주장한다는 것은 자기만족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문모형과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나의 관점을 버리고 그 분들 속으로 들어가 진실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모습을 찍었다. 내가 생각하는 동강이나 댐문제가 아닌 그들이 생각하는 동강과 댐의 이야기를 담아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거대한 댐이란 소용돌이 속에서 외롭게 대처해야 했던 거짓없는 인간의 모습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이번 작품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영화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던 지난날의 꿈에서부터 앞으로 계속 기록영화를 한다고 했을 떄 어떤 생각을 밑바탕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커다란 교훈 하나를 얻었다. 기록영화를 한다는 것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소재를 찾고 생각한 주제를 쫓아 찍는 카메라 중심의 촬영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카메라 밖으로 나와 그 사람 속으로 깊이 들어갈 때만이 진실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동강은 진정으로 모두의 강이 되고 있다. 작업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서 다루어지고 찾는 사람이 늘어나니 많은 사람들이 영월댐에 대한 나름의 목소리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동강은 아직도 술렁이고 있다. 오히려 앞으로 더 많은 고통과 아픔이 잉태될 수 있는 곳이다. 동강을 사이에 둔 논쟁이 끝나지 않았고 댐을 강행하겠다는 정부의 입장도 아직은 변하지 않았다. 더욱이 동강 지역 주민들에 대한 정책적 무관심 아니 무시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동강은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주고 흐르고 있다. 진정 우리 모두의 강이 되길 바란다.




김성환 Filmography
2003 <우리 산이야>
2002 <김종태의 꿈>
1999 <동강은 흐른다>
1993 <개나리꽃>
1992 <유예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