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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리의 <잔인한 나의 홈>_ 가면을 벗은 그녀들의 이야기

변성찬(영화평론가)






<잔인한 나의, 홈>은 친족성폭력 피해자 돌고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돌고래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엄마에게 고백했지만 엄마를 비롯한 가족은 그녀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고, 쫓기듯 집을 나와야 했다. 그녀는 집에 남아 있는 동생들을 위해 가해자를 고소했고, 가족과 친척들은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잔인한 나의, 홈>은 ‘아무도 믿고 싶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미덕은, 단순히 친족성폭력 피해자인 ‘돌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친족성폭력 생존자 ‘돌고래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돌고래의 남다른 용기와 감독 아오리의 세심한 배려가 그 미덕의 원천일 것이다.


돌고래의 싸움은 힘겹고 외롭다. 한편으로는 ‘법의 원칙’에 맞서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가족(특히 엄마)이 지키려고 하는 ‘가족의 행복’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재판정에서 피해자 진술(가해자의 범죄 사실 증언)을 하고 나온 돌고래는, 그 일로 “가족들이 다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착잡해 한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죄를 범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증거(물증과 목격자 진술) 부족을 사유로 가해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다(‘무죄 추정의 원칙’). 1심 판결 결과를 전해 들은 돌고래는,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판사가 자신의 말을 믿어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을 더 반가워한다. “내가 바랐던 게, 그거였거든요. 그게 사실이라는 거,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거…….” <잔인한 나의, 홈>의 카메라는 그녀가 가장 원했던 그것, 즉 그녀의 말을 들어 주고 믿어 주는 것을 수행하고 있다. 감독 아오리는 영화 밖에서는 그녀의 조력자가 되고, 영화 안에서는 (쉼터 실장인 공명과 함께) 빛나는 조연이 되기도 한다. 카메라 앞에서 드러나는 돌고래의 남다른 용기는 바로 이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잔인한 나의, 홈>에서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의 도구가 아니라, 주인공 돌고래와 감독 아오리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의 매개이며, 더 나아가 이 영화를 보게 될 잠재적 관객들과 돌고래 사이를 잇는 관계의 도구가 될 것이다.


<잔인한 나의, 홈>은 결코 화려한 영화적 수사를 동원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의미에서의 수행적(performative) 다큐멘터리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카메라가 없었더라도, 돌고래는 자기를 찾기 위한 행동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쩌면, 이 영화의 카메라가 없었더라면, 돌고래는 그 용감한 행위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잔인한 나의, 홈>은 진행되고 있는 재판과 관련된 사실과 정보의 전달보다는, 돌고래가 그 수행 과정에서 순간순간 겪게 되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흐름에 더 집중하고 있다. 이 섬세한 공명 능력 덕분에, 이 영화는 안보영의 말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성폭력 생존자의 말을 듣는) 새로운 프레임을 형성하도록”(인디포럼2013 프로그램 노트)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는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조세영, 2009)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로 불려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가면놀이>(문정현, 2012)를 통해 아동성폭력 생존자(특히, 친족성폭력 생존자)와 그 가족이 겪게 되는 질곡과 고통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생존자는 대개의 경우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존재(자신이 피해자임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가면 속의 억압과 고통을 벗어나 자기 치유의 과정을 밟아 나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가면이 여전히 필요한 존재이다(‘가면놀이’와 ‘모자이크’). 특히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경우가 그러하다(<가면놀이>에서 끝까지 모자이크가 필요했던 어머니들은, 바로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의 어머니들이다.). <잔인한 나의, 홈>에서 돌고래와 아오리는, 마치 <가면놀이>의 ‘가족의 힘’의 어머니들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질곡에 대해 화답하듯, 당당히 가면을 벗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돌고래가 카메라 앞에서 맨 얼굴을 드러내는 데 어떤 용기가 필요했을 것만큼이나, 그녀의 맨 얼굴을 담아내는 이 영화의 카메라에게도 그만큼의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세 편의 성폭력 생존자 다큐멘터리는, 그녀들이 영화의 안팎에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최전선에 돌고래-아오리가 있다.






작품정보


잔인한 나의, 홈 아오리|2013|77min

우연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친족성폭력 피해자였다.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녀는 쫓기듯 집에서 나와야 했다. 그리고 집에 남아있는 동생들을 위해 가해자를 고소하게 된다. 나는 아무도 믿고 싶지 않는 그녀의 이야기를 <잔인한 나의, 홈>이라는 잔혹한 동화로 그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