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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드 다운' 김동빈 감독 "세월호 상처, 가릴수록 썩어요"

[노컷 인터뷰] "수장 당한 희생자들 충격…미국서 카메라만 들고 한국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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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하나만 들고 무작정 한국에 왔어요.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서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간 김동빈 감독은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했다. 부모님은 집에서 그가 영어를 쓸 때마다 혼냈다고 한다. '외국인처럼 서툴게 한국말을 하기 싫었다'고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여느 청년들처럼 해사하기 그지 없었다. 

홀홀단신 카메라 하나만 짊어진 채, 그가 조국의 땅을 밟은 이유는 하나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남산 타워도 아니고, 경복궁도 아니고 여의도 국회였다. 지난해 여름,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으로 치열한 농성을 벌이던 때였다.

"계속 유가족 분들과 함께 거기에 있었어요. 다큐멘터리에는 없는데 그분들이 농성하시는 모습들도 담았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셨던 분들도 나중에는 믿음을 주시고, 마음을 열어 주셨어요."

김동빈 감독은 미국에서 처음 세월호 사고를 접했다. '전원 구조' 됐다는 오보는 불과 몇 분 사이에 뒤집어졌고, 그는 그 때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충격적이었죠. 제가 보던 장면은 사람들이 수장당하는 모습이었으니까요. 그것에 애통함을 느끼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고자 했어요."

세월호 다큐 '업사이드 다운' 시사회에서 유가족들과 간담회 중인 김동빈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시네마달 제공)


'업사이드 다운'이라는 제목은 '이 사회의 정상과 상식이 뒤집혔다'는 뜻을 담아 지었다. 사실 얼마든지 영상적으로, 미학적으로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동빈 감독은 최대한 감독으로서의 자신을 죽이고, 4인의 아버지와 전문가 16인의 인터뷰를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인상적인 영상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러 그러지 않았어요. 저를 드러내기보다는 이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싶었거든요. 국회 농성 장면을 담지 않은 것도 이 연장선상입니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국내외에서 크라우드펀딩을 했는가 하면, 해양경찰·청해진 해운·진도 VTS·새누리당 의원 등은 섭외가 불가능해 영상에 담을 수조차 없었다. 그는 '세월호 사고'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유가족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포지션을 떠나 세월호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안타까웠던 건 일부 사람들이 피해자를 적대시 했던 거예요. '유가족들이 왜 저럴까'를 한 번쯤 질문해보고 공감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촬영을 통해 더 깊게 '세월호 사고'를 접한 김동빈 감독은 인간적인 마음이 결여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엿본 셈이다. 그는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미국에서 일어난 한 사고를 떠올렸다.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 여객기가 추락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 정말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정확한 컨트롤 타워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떤 대형 사고가 일어나면 대통령이고 뭐고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냥 그 지역의 소방구조대가 모든 것을 지휘합니다. 승객들은 기적적으로 생존했죠. 만약 세월호 참사도 그랬다면 어땠을지…."

그는 '업사이드 다운'이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2주기가 된 세월호 참사를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 말이다.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면 그걸 받아들이고 직면해서 고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가리면 가릴 수록 상처는 썩어들어 갑니다.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첫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