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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로 7일째인 서울독립영화제,
중반부를 넘어선 영화제는 더더욱 그 열기를 더하며 후반부 스퍼트를 올리고 있습니다.
달리기는 응원석의 구경만으로도 스릴만점이지만  역시, 묘미는 옆에서 함께 달리는 것이겠지요?
서울독립영화제 숨가쁜 달리기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리뷰들이 여러분께 선택의 팁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경계도시2> 망각되었을지언정 사라지지 않은 참극

2003년 가을. 37년만에 귀국한 주인공 송두율 교수. 국정원은 그를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하다고 확신하고 체포 영장을 발부한 상태. 그럼에도 송두율은 정면돌파를 작정하고 귀국을 감행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송교수가 북한 노동당원이고 본인이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는 국정원의 수사 과정 은 대서특필된다. 분단국가의 현실에서 노동당 입당은 북한 체제의 한가운데 있다는 뜻으로 간주된다. 자신을 남과 북을 넘나드는 학자, 즉 경계인으로 규정한 송두율은 딜레마에 처한다. 보수는 물론 진보 진영조차 난색을 표한다.

난국은 점점 갈등으로 치닫는다. 진보 진영은 송교수의 입당 문제를 운동권이 힘을 잃고 총선에서도 패할 요인으로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곤 여론의 관용을 호소한다. 송두율은 국보법에 위반된 죄를 지었으나 그 역시 분단의 희생양이다. 그러나 이는 국보법을 인정하는 아이러니다. 국정원과 야당의 결탁, 보도에 관한 위법 행위를 그대로 따르는 언론의 여론 몰이를 시작으로, 송두율 교수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방영한 방송사에 대한 압력과 고발 등 보수 세력도 총공세를 펼친다.

노동당원으로 의식, 행한 바 없다는 송두율의 양심을 건 목소리에도 한국사회는 귀를 닫는다. 이제 사건의 해결은 그에게만 달린 게 아니다. 추방을 당하는 것이 송교수 개인에겐 가장 옳은 일이지만, 감정적인 여론과 진보 운동가들의 존재 위기를 고려하면 국적과 경계인이라는 이름을 포기해야 한다. 분단 이데올로기는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양자택일만 허용한다. 집단주의는 개인의 신념보다 집단의 가치를 우선한다. 사상적 전향을 강제하는 국가의 폭력만큼이나 이들은 부조리하다.

이와 같은 공론의 장에서 중심인물에 대한 윤리적인 접근은 무시된다. 영화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간과하지 않는다. 남한과 북한의 중심에서 균형을 지키고 싶었으나 남한에서 쉽지 않았던 이유, 그렇기에 37년만의 귀국은 균형 감각을 찾으려는 결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침묵을 원하는 송두율에게 질문하길 관두는 카메라나 국적포기라는 결정으로 그가 감당해야 할 시간을 진심으로 우려하는 감독의 태도 또한 인격적인 존재를 존중하지 않고는 나오기 어렵다.  

철철 끓어오르는 영화의 온도를 담아내기에는 글로는 부족하다. 언론, 이데올로기, 집단주의, 국보법의 문제를 관통하는 레드컴플렉스가 자명한 이곳, 비극을 너무도 간단하게 망각해버리는 한국 사회를 관객은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 자기 안의 레드컴플렉스와 필사적으로 싸우는 고투는 비단 감독만의 것이 아니다. 아파도 고통에 맞설 것. 객석의 몫이 어느 때보다 크다. 정아람(관객심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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