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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올라온 < 꿈의 공장 > 리뷰입니다.
영화 < 꿈의 공장 >을 넘어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욱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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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누군가의 피'를 마시며, '꿈'을 이루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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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콜트콜텍 노동자와 '꿈의 공장'


한국 120번째 부자 사장님, 너무 잔인하시네
콜트/콜텍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 꿈의 공장 >

 

  
영화 <꿈의 공장>의 한 장면. 
 
영화는 <꿈의 공장>이라는 영화 제목에 맞게, 꿈에 관한 인터뷰로 시작한다. 중년을 넘긴 아줌마, 아저씨들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수줍게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 만지는 일이 좋았다, TV에 나오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꿈이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등등. 콜트·콜텍에서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인터뷰다. 아니, 정확히 말해 '만들던 노동자'들이라고 해야 할까.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이전 세대의 거창한 꿈과도 다르고, 연예인이나 CEO가 되겠다는 요즘 세대의 화려한 꿈과도 다르다. 소박한 꿈, 그러나 혹자는 그런 것도 꿈이냐고 할 꿈. 그런 생각은 이들의 현재 꿈이 무엇인지 들어보면 더 분명해진다. 영화 말미에야 제시되는 그들의 꿈은 다시 기타를 만드는 것.

그런데, 이들의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곳은 기타 만드는 공장이 아니다. 이 영화의 어디에서도 현장에서 땀 흘려 작업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과수원인 듯 보이는 산비탈에 앉아, 꽃밭인지 묵정밭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공터 한 가운데 서서, 음료수를 배달하는 트럭의 운전대 앞에 앉아, 그리고 먼지 쌓인 책상만 휑뎅그렁하게 놓인 가건물의 책상 앞에서 인터뷰를 한다.

그들은 또 독일과 미국과 일본의 길거리 위에 있다. 전 세계 음악인들이 모여든다는 그곳에서 거리행진을 하고 사람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주며 서명을 받고 서툰 몸짓으로 공연을 한다. 그 어느 곳도 그들이 있어야 할 곳, 그들이 있고 싶은 곳은 아니다.

 
(..중략)


노동 현실 대신, 기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감독


그러나 <꿈의 공장>은 자본의 착취와 한국의 노동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의아하리만치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이나 노동 현장의 열악함을 조명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는 김성균 감독이 작년에 만든 <기타(其他, Giutar) 이야기>에서 다 했는지도 모른다.

땀과 눈물이 맺힌 노동자들의 호소 대신 감독은 이들이 만든 기타와 그 기타로 또 다른 꿈을 노래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넣는다. 한국의 인디 밴드들과 독일·미국·일본에서 만난 뮤지션들의 기타와 관련된 꿈을 이야기 한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기타와 만나게 되어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었는지에서부터, 펜더의 넥이 어떻고, 아이바네즈의 소리가 어떻고, 깁슨 몸체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까지.

뮤지션들의 기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기타라는 생산품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심연이 존재한다는 것, 두 개의 거대한 무지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는 것. 뮤지션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선호하는 유명 기타 브랜드들의 상당수가 한국의 콜트·콜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과 그들이 지불한 기타 값에 착취당한 노동력이 대가로 따른다는 사실을. 노동자들도 알지 못하는 게 있다. 자신들이 만든 기타가 어느 나라의 누구에게로 가서 어떤 외로운 영혼을 위로하는 노래가 되는지를. 그리고 그 노래를 듣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4년간의 투쟁 끝에 이제는 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그들이 만든 기타가 그저 잘 만들어진 공산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백을, 누군가의 분노를, 누군가의 호소를 대신하고 함께 하는 영혼의 공명통임을,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신들이 될 수도 있음을 믿는다.

뮤지션들도 마찬가지다. 회사 측의 비인간적인 처사를 알게 된 후, 그 기타로 부르는 노래가 어찌 예전 같을 수 있겠는가. 수십 번의 '빼빠질'에 지문이 닳고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산재처리조차 받지 못하는 수고 속에 만들어진 것이 그 기타임을 알고 나서 어찌 그 기타가 어찌 예전 같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이미 노동자들의 한숨으로 이은 줄이고 울음을 삼키는 노동자의 몸통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부당해고 이후 4년간의 목숨 건 투쟁을 통해 얻은 것이라면…, 너무 감상적일까.

 

메이드 인 '꿈의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 순 없을까

 

  
영화 <꿈의 공장>의 한 장면.
 
그런 의미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과 기타를 연주하는 뮤지션들의 고립되고 소외된 꿈이 서로 연대해 가는 현실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뮤지션과 노동자의 꿈을 병치하였지만 마침내 하나의 꿈으로 녹아들게 하는 편집은 이 영화를 현실의 재현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 현실을 구현하는 연대의 장이 되게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영화로 인하여 노동자들과 뮤지션들, 그리고 시민들과 또 다른 연대의 장을 열어주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이 다큐멘터리가 처음 세상에 선을 보이는 날도 그렇다. 검푸른 해운대의 밤바다를 배경으로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의 거친 손과 기타를 연주하는 뮤지션들의 자유로운 손이 만났다. <한음파> <일요일의 패배자들> <킹스턴루디스카>가 "No Workers, No Music. No Music, No Life"를 외치며 음악을 연주할 때, 가장 열렬한 목소리로 환호하고 흥겨운 몸짓으로 박자를 맞추던 이들은 다름 아닌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티셔츠에 새겨진 "Song for worker"라는 글자와 그 글자를 딛고 서 있는 기타였다. 이윤엽 판화가가 새겨준 그림이었다. 음악과 영화와 그림에서 가장 소외되었던 이들이 이제 음악과 영화와 그림 한 가운데 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을 처음 본 거대한 쇼핑몰 로비에서도, 영화가 상영되기로 되어 있던 그 건물 7층의 멀티플렉스에서도, 검게 그을린 얼굴에 주름이 깊은 초로의 노동자들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영화 축제의 주인으로, 진열된 상품의 주인으로, 자기가 주인공도 아닌 영화마저도 주인으로 거리낌 없이 누비고 다니는데, 어째서 노동자들만 그토록 멋쩍어보여야 하는 것일까.

김성균 감독은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콜트·콜텍 노동자 이야기로 이미 전작을 만들었다. 그런 만큼 오랜 시간을 그들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촬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작인 <기타(其他, Giutar) 이야기>도 그렇고 이 <꿈의 공장>도 그렇고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대신 이 영화를 보게 될 사람들, 노동자이면서 자신이 노동자임을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 자신이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사슬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누군가의 피와 분노와 슬픔을 먹이 삼아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있음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게 목적인 듯하다.

그 질문은 영화 속에서 뮤지션들에게 먼저 던져진 바로 그것이다. "이 기타가 노동자의 착취로 만들어진 것을 알아도 사겠는가." 뮤지션은 대답한다. "살 것 같다." 그 질문은 이제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는 어째서 어떤 상품이 착취의 대가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고도 구매를 포기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한 개인의 의지와 도덕성 문제로 치부해야 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이 지극히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대답이야말로 핵심적인 비밀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던져진 질문은 또 있다. 노동의 착취와 소외가 한국에서 일어나지만 않으면 괜찮은가. 베트남과 중국, 인도네시아의 노동자에 의해 대신 치러진다면 그렇다면 괜찮다는 말인가. 메이드 인 베트남도 아니고, 메이드 인 차이나도 아닌, 메이드 인 '꿈의 공장'에서 상품들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인가.

이런 류의 다큐멘터리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다행히 <꿈의 공장>은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서 상영이 됐다. 거기다가 영화제 행사의 일환인 <ACF (Asia Cinema Fund)의 밤>에서 배급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적어도 찾아보고 싶은 사람은 찾아볼 수 있게는 된 것 같다. 대박이 나거나 흥행까지 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2007년도에 시작하여 아직까지 진행 중인, 그러나 여전히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사건이 널리 알려질 기회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환호할 만한 일이다.

 

* 매 월 마지막 주 수요일, 홍대 클럽 빵에서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수요문화제가 2008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150여 팀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한 이 공연은 이번 달, 10월 27일에도 변함없이 진행된다.



*작품정보

꿈의 공장 김성균 | 2010 | 80min

갑작스런 폐업 이후, 지속적인 투쟁을 해 온 콜트/콜텍 노동자들. 하지만, 회사측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노동자들은 국제적인 연대를 행한다.

기타 (其他/Guitar) 이야기 김성균 | 2009 |68min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힘겨운 노동과 자본의 위장폐업에 대응한 힘겨운 복직투쟁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위한 콘서트>에 참여한 홍대 인디 뮤지션들과 노동자들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