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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미동] 5인 5색전 그 두 번째 '태준식 감독전'



세상의 시간은 누가 살아가는가 - 태준식의 시선이 머무는 곳의 그들





태준식 감독은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 감독전에서는 근래 만들어진 <필승 ver. 2.0 연영석(07>과 <샘터분식(08)>을 상영하지만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만든 <인간의 시간(2000)>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인간의 시간>은 98년 IMF 이후 정리해고된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시작한 450 여일간의 지난한 투쟁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투쟁은 결국 패배로 끝이 났고 노동조합은 해산했으며, 투쟁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은 씁쓸하고 고단한 ‘인간의 시간’을 곱씹으며 동지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린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많은 작품들이 소기의 승리를 축하하며 더 큰 목적을 향해 단결과 투쟁의 의지를 굳건히 하는 이야기인데, 그와 비교해서 이 작품은 그 투쟁이 패배로 끝이 나면서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인간의 시간은 노동과 투쟁과 승리와 전의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호를 외치며 바라보는 하늘의 한 자락처럼, 배경으로 보이는 사이사이의 풍경에 더 깊이 녹아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구호를 외치는 집결된 소리보다도 소리 없이 묵묵히 오르는 산기슭의 배경음과 승리를 경험하지 못하고 병으로 죽어간 동료의 영전 앞에서 짓는 표정 하나하나가 오히려 구호의 의미를 절절하게 전달하고 있음을 느낀다.

<필승 연영석>은 여러 다양한 투쟁의 현장을 교차하고 있다. 노래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은 사실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 투쟁의 현장들을 가로지르며 꿰매고 있는 봉제실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인상에 남는 것은, 예를 들면 난생 처음 시위라는 걸 하며 구호라는 걸 외쳐 보았을 KTX 승무원 언니들의 곱게 화장한 얼굴들과, 또 연영석의 노래 “간절히”에 박자를 맞추며 따라 부르는 안경 낀 모범생다운 청년의 하얀 얼굴처럼, 예전에 노동자라는 집단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깨는 인물들의 표정을 주시하는 카메라의 태도이다. 역시나 감독이 등장시키는 인물은 이주노동자와 아줌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이 노동운동의 속성이 변했음을 입증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표정은 허탈하고 고달프고 당혹해하고, 감내하거나 분노하거나, 노래하고 눈물 짓고미소를 띤다. 감독은 그들의 투쟁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지만 - 적어도 효과적으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 그들의 삶이 고달픈 건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을 표정으로 보여준다.

설명하지 않는 것은 <샘터분식>도 마찬가지다. 분식집 주인과 단체 활동가와 힙합퍼가 하나의 다큐멘터리에 비등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들의 일상과 고단함을 보여주며 소박한 희망을 말하도록 한다. 시위 현장과 농성장의 장면들이 쉽게 관습처럼 보이는 지금, 감독은 서사를 조밀하고 명확하게 설명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간접적이고 정서적인 방식으로 제안하는 쪽으로 작품의 성격도 변화시키고 있다. 인물들의 표정을 주시하는 카메라는 그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항목이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향해 노동자와 함께 돌진하며 카메라를 들었던 태준식 감독은 자신도 나름대로 인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지금은 노래하는 연영석과 샘터분식에서 밥 먹는 사람들을 쫓아다니고 있다. 그 변화를 관객의 눈으로 함께 쫓다보면 다시 <인간의 시간>이 생각난다. 개인적으로 태준식 감독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인간의 시간이며, 감독 본인에게도 그 작품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의 자기 철학이 가장 단단했던 노뉴단 출신으로, 독립다큐멘터리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평을 듣는 그가 지금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언가에 복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감독 자신의 시간을 표현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여러 노동의 현장을 가로지르는 봉제실로서의 카메라를 지고 대도시 빈민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문화종사자로서의 시간들. 태준식의 시선이 머무는 곳의 그들은 곧 태준식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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