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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FF2010 웹 독닙신문 8호


<아이들>의 류미례 감독 인터뷰


아이들은 본인 영화의 주인공들이자 본인 인생의 연출자들이라고 말하는 류미례 감독. 사랑스러운 세 아이의 엄마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류미례 감독의 <아이들>이 서울독립영화제2010에서 상영됐다. 감독의 세 아이 하은, 한별, 은별이 주연하는 육아일기이자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들>. 여든 살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류미례 감독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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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기획하고 촬영하시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둘째 아이 한별이를 키울 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어요. 보육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전에 보육환경, 보육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한 영상물을 만들고 싶으시다는 부탁이었죠. 그 때 한별이가 너무 어려서... 죄송하다고, 제가 한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나이가 되면 그 때 꼭 만들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만들게 됐어요.


10년간의 육아기록이라고 하셨는데, 10년 동안 어떤 방식으로 촬영을 진행하셨나요?

따져보면 정확히 12년간인데요, 98년부터 2000년까지는 제가 아기가 없었기 때문에 자유로이 촬영을 할 수 있었어요. 그 당시엔 결혼적령기가 다 됐는데 결혼은 안하고 불안한 직업을 선택한 저에 대해서 가족들이 걱정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죠. 영화에 잠깐 나오는 엄마가 “빨리 시집이나 가라”든지, 김장 끝나고 난 뒤풀이에서 “내가 너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는 엄마의 한탄 같은 거요.

만약 그 때 ‘자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으면 적령기 신화에 대한 적령기 여성의 스트레스를 담은 영화가 한 편 나왔을 텐데 그 당시에는 ‘자기 이야기’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어서 가족 간 관계에 많이 집중했던 것 같아요.

2001년부터 2003년 정도 까지는 모녀 3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어서 첫 아이 하은이와 엄마를 많이 찍었어요. 하은이가 태어나고 6개월 정도까지는 엄마가 하은이를 같이 돌봐주셨기 때문에 촬영하는 게 괜찮았어요. 그런데 그 후에는 엄마도 바쁘시고 저도 집안일을 해야 했는데 집안일 하면서 촬영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삼각대를 많이 썼어요.

2004년부터 2005년까지는 한별이 키울 때인데 이때에는 열심히 아이만 키우자 해서 촬영을 거의 안했고요. 2006년부터 2007년까지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긴 후에 가벼운 몸으로 촬영을 했죠. 그리고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처음으로 스태프들과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조연출인 김재영 감독님이 함께 촬영을 도와주셨어요. 그렇더라도 집안에서의 모습 같은 건 여전히 삼각대를 세운 채 촬영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하은이나 한별이가 자기들도 찍어보겠다고 해서 카메라를 건네준 적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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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하은이가 아기였을 때에는 카메라를 싫어했어요. 제가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땐 자기를 얼른 안아주지 않았으니까요. 나중에 말을 할 만큼 큰 후에 제가 액정을 자주 보여주고 컴퓨터로 찍은 화면들을 편집하는 걸 본 후에는 본인이 먼저 찍어달라고 할 정도로 카메라를 알아가는 것 같더라고요. 한별이가 태어난 후에는 샘이 많아져서 자기를 많이 찍어달라고 했어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왜 한별이만 찍느냐, 나도 찍어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은이와 카메라’라는 내용으로 한 씬을 만들 정도로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아요. 하은이가 한별이에게 “카메라는 거울 같은 거야”라고 설명하는 장면, 제가 밥을 차리는 동안에 TV 화면을 찍는 하은이에게 ‘사람 좀 찍어줘’했더니 집안에 있는 성모상이나 사람 그림을 열심히 찍는 장면, 그리고 힘들다고 목을 잡고 있는 모습 등등 써치하면서 혼자 웃었던 장면들이 많아요.


촬영하시면서 힘드셨던 점은 없었나요?

한별이가 어린이집에서 “엄마가 ‘그림자 이모’라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라며 원망의 눈길로 바라보던 상황이 많이 마음이 아파요. 지금도 미안해요. 그저 아이들의 모습이 예뻐서 남겨두려고 카메라를 든 게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위해서, 그 순간의 내밀한 공기를 잘 포착하기 위해서 든 카메라였기 때문에 카메라를 드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엄마라기보다는 그림자이모여야 해서 그래서 힘들었어요. 너무 기뻐서, 너무 슬퍼서 감정에 매몰되어버리면 카메라를 들 수 없거나 찍었어도 제대로 안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상을 재료로 작업을 한다는 건 항상 삶에서 1센티 정도 발이 뜬 채로, 그렇게 삶과 긴장관계를 유지한 채로 서있어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 시간과 생활을 재료로 영화를 만드는 일이 끔찍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어요. 한 2년 정도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해서 회의를 했던 것 같아요. 극영화나 애니메이션 장르도 나름대로 힘든 점이 많겠지만 최소한 ‘대상을 착취한다’는 마음은 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사무실(푸른영상)의 김동원 감독님이 “키에슬로프스키가 그래서 다큐에서 극영화로 전환 했단다”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깜짝 놀랐죠. 영화사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나는 땅만 보며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선배들의 전철을 밟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요. 그렇게 헤매고 고민하다가 김재영 감독의 <천막>과 김준호 감독의 <길>을 보고 나서 내가 돌아갈 자리가 다큐멘터리라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평면적인 활자에 숨을 불어 넣는 일, 일상적으로 보는 천막이라는 풍경 안의 사람들을 보여주는 일, 내가 하던 일이 바로 그런 일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에 다시 힘을 찾았던 것 같아요. 6년이라는 시간이 제게 많은 방황과 깨달음을 주었어요. 하하.


결혼 전/후 (혹은 출산 전/후) 영화작업을 하시는데 있어서 달라진 점이라면?

영역이라는 측면에서는 좁아졌지요. 대추리에서 용산에서 일이 터졌을 때 달려가고 싶었어요. 결혼 전에 <동강은 흐른다> 작업을 할 때 그 곳에서 동강 사람처럼 먹고 살고 하면서 지냈던 시간이 지금도 너무 그리워요. 지금도 6시만 되면 집에 돌아가야 해요. 아이들을 돌봐하니깐요.

좋은 점을 생각해보면 ‘일상’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더 섬세해질 수 있었다는 거예요. 결혼, 출산, 육아와 같은 그런 평범한 삶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의 결이 있는지, 그 마음속 회오리들에 대해서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예요. 어쨌거나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타박타박 걸어가면서 그렇게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반짝거림들을 들여다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저도 자라고 있는 중이예요. 더 자란 저이기 때문에 더 깊어진 시선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걱정스러운 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저의 자리가 ‘지키는 자의 자리’, 그러니까 자칫 보수적인 자리에 서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예요.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워져야하는 자리, 주류질서에 가려져있는 진실들을 찾아내야하는 자리인데 제가 선 자리가 사실 둔해지기 쉬운 자리라서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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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노하우에 대해 한 말씀

김태일 감독님이 최근에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우리가 노력할 건 전 가족의 스태프화야” 라고요. 김동원 감독님은 첫 가편집본을 보시고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냥 편안하게 너희 가족 포토앨범 만든다고 생각해라” 계획을 크게 잡으면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은 변화무쌍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계획대로 움직여주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지금의 상태는 김동원 감독님이 말씀하신 마음 자세를 가지고서 김태일 감독님이 말씀하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노하우가 아닐까 싶어요. <아이들>을 보고난 후, 지금 아이들 의욕이 장난 아니거든요. 지금 잘 해서 아이들의 스태프화에 대해서 희망을 가져보려고 해요.


아이들이 스크린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강화도 집에서 첫 가편집 시사회를 했는데 집안이 눈물바다가 됐어요. 감동의 물결이었을까요?

그건 아니고요. 막내 은별이는 “나는 언제 나와?”, “왜 나는 안 나와?” 뒹굴뒹굴 구르면서 떼쓰며 울었고 한별이는 눈가가 빨개지더니 “누나만 저렇게 많이 찍고 나는 왜 조금밖에 안 찍었어?” 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나마 울지 않은 건 하은이였는데 한 번 씩 웃으면서 “한별이가 제일 많이 나오네~”했어요.

출연 분량에 대한 아이들의 신경전은 최종 편집할 때까지도 아주 대단했는데요, 인형 조립하는 클로즈업이 필요했는데 서로 하겠다면서 막 싸우더군요. 아마 언젠가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딸처럼 “아빠 저도 사생활이 있어요”라고 항의할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아이들의 의욕은 최고조인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분들은

이런 분들께 <아이들>을 추천하고 싶어요. 일과 가정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워킹 맘들. 육아라는 미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예비 엄마, 예비 아빠. 결혼, 육아, 교육 등 일상의 고민들을 진지하게 나누고 싶은 우리 모두.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다면 공동체 상영할 때 놀이방을 운영했으면 좋겠어요.

<엄마...>때도, <아이들>도 은별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외출할 엄두를 못 내잖아요? 그분들하고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중이예요.


다음 작품 계획은 있으신가요?

두리반의 유채림 선생님이 힌트를 주신 건데요. <아이들>의 잔혹버전(?), 성인버전(?)에 대해서 만들고 싶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어른들이 포기했던 것, 남편과 저의 다툼, 보육노동자들의 현실, 이런 것들을 담은 영화를 만들까 아니면 그냥 DVD에 넣을까 고민중이예요.

그런데 2011년에 강화로 이사를 가는데 그곳에서의 생활을 예측할 수가 없어서 아직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어요. 저의 삶은 항상 변화무쌍하고 저의 영화는 그래서 예측불가능한데요. 단지 바람이 있다면 열심히 살고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삶을 질료로 영화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영화로 관객들을 만나고, 그렇게 만나면서 또 길을 찾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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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신 소감, 그리고 서울독립영화제에 응원 한마디 부탁드려요.

너무 기뻐요.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는데 김동원 감독님이 “지금 이 상태면 떨어지니까 내년에 내라” 그러셔서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네마달 이상엽 피디가 “내년엔 된대? 1년 동안 다 돌고난 영화면 정말 뛰어나지 않으면 힘드니까 그냥 올해에 내~”라고 하셨죠. 그래서 사무실 문정현 대표랑 심사숙고한 후에 냈어요.

색보정 하면서 제가 만날 걱정했거든요. 본선진출 소식을 알려준 건 색보정 해주신 백경원님이었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문자로 소식 듣고 너무 기뻐서 여기저기 문자를 많이 보냈죠. 저희 아이들을 키워주셨던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어린이집 부모님들, 공부방 선생님들께 좋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영화제를 열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저 같은 독립영화감독들은 열심히 영화를 만들어도 틀 공간이 없어서 속상한 경우가 많은데 서울독립영화제가 내내 건강하고 굳건한 모습으로 남아서 한 해 동안 고생하신 독립영화인들을 격려하고, 때로는 따끔한 질책도 해주시면서 독립영화인들의 진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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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변화무쌍한 삶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영화를 만드는 류미례 감독. 그의 바람은 열심히 살고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삶을 질료로 영화를 만들고, 그렇게 만 영화로 관객들을 만나고, 그렇게 만나면서 또 길을 찾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앞으로 그의 새로운 영화가 기대되고, 머지않아 영화가 있는 다른 곳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글/ 데일리팀 서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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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류미례 | 2010 | 70min
다큐멘터리감독인 나는 준비없이 결혼하여 얼떨결에 엄마가 되었다.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다는 자책으로 괴로워하면서 10년동안 세 아이를 키웠다결국 이 영화는 세상에는 나 같은 엄마도 있다는 것을 쑥스럽게 고백하는 10년 간의 육아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