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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속에서 본 비정규직 투쟁 [전태일의 기억]




한범승(미디어활동가)
 
아주 오래된 옛날 얘기부터 해볼까 한다.17~18세기 매뉴팩처 시대의 수공업적 노동자는 ‘장인’이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대학교수급이라고나 할까? 당시의 노동자는 업무에 숙련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일하는 모습과 작업장의 환경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의 일상은 기계가 생산에 투입되면서 일시에 파괴되었다. 테일러 포드 시스템의 전지구적 확산과 더불어 생산 과정 자체가 투명해지면서, 19세기 산업혁명 이래 노동은 언제나 탈숙련화의 방향을 취했고, 그것은 노동자의 탈권력화로 이어졌다. 그것은 신세기를 향한 핑크빛 무드 속에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신종 직업의 무분별한 등장으로도 깨지지 않을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그 게임의 규칙 속에서 요 몇 년 새 우리나라에 불어 닥친 IMF 구제 금융은 구조조정이란 이름하에 수많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시켰다.
 
- 제 1장 : 퇴출..
98년 IMF 때 다들 이렇게 말했다.“모두 다 죽을 수 없기에... 누군가는 배에서 내려야 한다”고..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그 1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것이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시간>(부제: 19980618-20000127_태준식/2000년/116분)은 바로 그 시점...“모두다 죽을수 없기에 누군가 배에서 내려할” 그 시점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과거 70,80년대 저임금 노동으로 중동에서 산업 역군으로 외화벌이 나섰던 늙은 노동자들이 정부가 98년 발표한 퇴출 기업의 명단에 현대중기산업이 포함되면서 노동조합은 현대건설로의 고용승계를 외치며 벌인 투쟁이었다. 태어나 단 한번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익숙하지도 않은 노동가요를 부르며 대학로, 명동성당, 서울역을 오가며 집회를 벌이고 정주영 회장의 집에까지 찾아가 대화할 것을 요청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전경들의 제지와 사복 경찰들의 음험한 폭력, 기름진 정부 관계자의 무관심 앞에 좌절할 뿐이다.
결국 450여 일간 거리에서 투쟁한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전지구적 공세를 등에 업고, 구조조정이란 이름 아래 사회 각계에서 자행되는 그‘합의’라는 것에 의해 퇴출되고 만다.
 
- 제 2장 : 확산..
경기보조원들은 말한다. “우리도 노동자이고 싶다.”고..
<겨울에서 겨울로>(박옥순/2001/53분)는 컨트리클럽 경기보조원들의 노조 결성, 파업, 해고 261일 간의 투쟁과 복직에 얽힌 보고서이다. 여기서 '캐디'라고 불러지는 경기보조원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며 사회통념상 일반적인 노동자에서도 제외된다. 하지만 그녀들은 출근시간과 근수시간을 사측에 의해 관리 받고 있으며 그 관리원칙에서 벗어날 시에는 해고통지서와 같은 계약해지를 받게 된다.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받지 못한 그녀들...
노동자이면서 노동자 지위를 받지 못한 예는 비단 “경기보조원”뿐만 아니었다. 2003년 발표되었던 김미례 감독의 <노동자다 아니다>(김미례/2003/60분)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현행법상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어, 거대한 건설 자재 회사에 소속되어 실질적인 노동자의 대우를 받는, 그러면서도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박봉에, 심한 노동착취에 시달리는 레미콘 노동자들 역시 그러했다. 그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측과 정부 측의 입장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힘들게 레미콘 기사 자격증을 땄지만.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려면 회사 측이 중재해주는 (사실은 일방적으로 제공해주는) 레미콘트럭을 구입하고 사업자로 등록을 하게 된다. 일종의 하청업 개념 같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 악덕 업주는 현행법의 허술함을 훌륭하게 요리해 내며, 이러한 레미콘 ‘사장님’들을 회사에 묶어두며, 자기 소유의 차에도 회사의 로고를 새기고, 근무시간도 자기들 멋대로 잔업과 초과근무를 강요한다. 못하겠으면 차 가지고 나가라는 말이지만, 나가면 업체들이 이미 짜고 일거리를 독점하기 때문에 개인 사업자의 입장으로 일거리 자체를 따낼 수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월급은 야근에 시달리며, 휴일까지 반납하고 일을 하지만, 한 달에 채 80만원도 안된다. 이들은 참다못해 노조를 결성하지만, 법적으로 사업자이기 때문에 노조가 인정이 되지 않는다. 회사는 이 점을 기가 막히게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보조원과 레미콘 노동자와 같이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로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특수고용직의 확산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게 된다.
 
- 제 3장 : 배신..
한국통신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계약직 노동자들은 그 타겟이 되었다. 상황이 절박해지는 가운데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2000년 법외 노동조합을 만들고 마침내 그 해 10월 노동조합은 합법화되지만 곧바로 구조조정의 광풍이 몰아치며 7천여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계약직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해고된다. 그리고 그해 12월 파업투쟁은 시작되고 노동자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517일에 걸쳐서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지만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연대의 실질적인 약속들이 깨어지며 결국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패배의 아픈 상처를 떠 안게된다.
<이중의 적>(이지영/2003/129분) 이라는 제목은 권력과 자본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적에 익숙해있던 노동자들이 맞닥트린 새로운 상황을 상징한다. 지금 ‘노동자는 하나’라는 대원칙으로 총파업이 조직되고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슬로건이 노동자계급의 첫 번째 슬로건이 되었지만 이러한 구호가 이제 구호로만 외쳐지는 슬픈 현실(자본의 미끼로 의해 노동자가 노동자를 지배하게 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 제 4장 : 분노..
노동자도 인간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청계천 한복판에서 제 몸뚱이를 불태웠던 ‘전태일 열사’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또다시 제 몸뚱이에 불을 지핀 ‘박일수 열사’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그런데 어쩜 이다지도 외침이 똑같은 것일까?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조선소,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하청 노동자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해 자결했다. 단 하나뿐인 혈육인 딸을 두고 추운 겨울 매서운 바닷바람 피할 곳 없어 공장을 전전하고, 펄펄 끓는 철판 위에서 햇볕 한줌 피할 곳 없어 그늘을 찾아 헤매야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과 절망을 남기고 열사는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박일수 열사가 일했던 현대중공업은 세계 제일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조선소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이 가려져 있다. 현대중공업에는 대략 150여개에 이르는 사내 하청업체가 있고, 1만 2천여 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과 하청업체에 의해 철저하게 법의 사각지대로 방치됐고, 일회용 소모품처럼 버려졌다.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 주휴수당, 연월차수당, 퇴직금, 그리고 4대 보험 가입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고, 노동부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 뿐이 아니다. 현대중공업 안에서는 노동자의 목숨은 파리 목숨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박일수 열사가 분신하던 날 아침에도 근-골격계로 산재치료를 받고 있던 현대중공업 직영 노동자가 산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병원 계단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뿐만 아니다 박일수 열사가 분신한 2004년 현대중공업에서는 산업재해로 인해 10여명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렇듯 전쟁터보다 더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공장 담벼락 안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법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됐고, 생존권을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부당해고와 업체 폐업 등에 무참히 짓밟혀야 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현대중공업 현장에는 근로기준법은 남의 나라 법이다. 법을 지키고, 법대로 하자고 했던 박일수 열사의 요구는 결국 해고로 돌아왔고, 죽음으로 하청 노동자의 절망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유언 - 박일수 열사가 남긴 56일의 이야기>(2005/80분/박세연)는 지난 2004년 2월 14일 울산에서 분신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분신한 날로부터 땅에 묻힐 때까지 총 56일의 기간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조명한 작품으로 현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지위를 대변하고 있다.
 
제 5장 : 그리고 지금...
006년 12월 30일 정기 국회 마지막 날 거대정당들은 ‘비정규직 보호법’을 처리해 버렸다. 그러나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도 전인 2007년 6월 30일 이랜드 그룹의 뉴코아에서 일하던 350명의 계약직 전산원 노동자들이 해고 통고를 받는다. 그리고 이들이 근무하던 자리는 외부용역업체에서 파견된 사원들이 채워졌다. 또한 같은 그룹 홈에버에서도 지금까지 무려 500여명의 비정규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만다.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법 시행 전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 한 것이다. 이번 이랜드 홈에버 사태에서와 같이 기업들의 2년 이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해고가 연이어 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정규직보호법을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호 속에서 더 가속화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이랜드 홈에버 사태와 같이 기업의 이윤을 목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대량 해고하는 악순환을 만들 것이다. 따라서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은 삶의 벼랑 끝에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며 이후 비정규직보호법의 적용에 있어서 선례가 될 수 있는 중요한 투쟁이다. 고로 이랜드 투쟁을 기록 중인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카메라에 더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랜드 투쟁이 어떻게 전개 되어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카메라에 기록되어지는 영상들이 편집되어 세상 밖으로 나올 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 되어 승리의 감격을 만끽할 수 있길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투쟁!
 
참고 및 인용 자료
인간의 시간 - 4백50일 동안의 싸움 현대중기산업. 고용승계 기만 합의 거절의 기록 (주성철) 겨울에서 겨울로 - 제 4회 여성영화제 홈페이지 http://www.wffis.or.kr
이중의 적 - 노동자뉴스제작단 홈페이지 http://www.lnp89.org/
유언 - 그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이동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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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기억 김이찬 | 2000 | 62min
전태일 열사 30주기를 맞이하여 전태일 정신의 계승에 대한 성찰을 중심에 두며 그날의 현장을 거슬러가는, '기억'에 대한 다큐멘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