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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이마주] 2011-03-30 리뷰 원문보기 >>

이강현 감독 [보라]



이 풍부한 관찰 다큐멘터리에 대해 어떤 말을 쓸 수 있을까? 139분의 러닝타임이 이토록 짧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경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일요일 밤,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만난 <보라>는 제도의 억압과 현대인의 우울에 대한 중압감을 기록하면서도 동시에 초월하려는 각고의 아름다움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하여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현장보건관리실태를 1년 여간 촬영한 기록'이라는 영화의 시놉시스는 마치 프레드릭 와이즈만류의 다큐멘터리를 예측을 하게 한다. 산업의학전문의의 진찰 내용을 기록하는 정지된 카메라와 노동자가 일하거나 짬을 내어 쉬거나 사라진 공장 사이사이를 수평이동하며 무방비상태로 돌아다니는 (스릴과 서스펜스마저 자아내는) 카메라는 이 영화의 두 가지 관심사와 태도를 반영한다. 와이즈만처럼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의존이 아닌 한정된 지정학적 공간에서 발생되는 제도와, 그 제도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로서의 태도가 있다면 다른 한 편으로는 노동과 여가에 대한 뛰어난 관찰을 보여주다가 그것이 뒤섞여 구분이 불가한(불필요한) 세계로 도약하는 자크 타티적 태도가 있다. 오히려 인간 세계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을 토대로 한 시청각적 실험, 노동의 후유증에 대한 재활운동과 현대인의 여가활동을 관심 있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특히 후반부) 자크 타티의 영화와의 관련성을 생각하는 일이 더 흥미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다만 굳이 지아장커의 다큐멘터리를 언급하진 않아도 될 것 같다).

<보라>는 와이즈만 다큐멘터리처럼 현대 사회의 억압된 환경을 고발하는데 있어 자유롭고 상상적이며 때론 비약처럼 헐거우며 독창적인 시공간상의 편집을 보인다. 각각의 산업현장에 대한 부분적 관찰들이 개연성 없이 묶여 반복되어 있다. 이 반복된 패턴을 풀어 보면 대상에 대한 인터뷰와 관찰이라는 두 행위가 전문가의 편과 그렇지 않은 편으로 나누어 진행되는 것 같다. 노동자를 상담하는 보건전문의 편에 세워둔 카메라는 그들의 작업 일지 같은 기록인데 그것은 거의 뚝뚝 끊어져 시간상의 축약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카메라가 어떤 노동자를 관심 있게 관찰하는 순간이 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카메라는 약간 방향을 틀어 대기실에서 (쓸데없이) 왔다 갔다 하거나, (괜히) 앉았다 일어났다 하거나, 특별한 말투와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대상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 경우는 일반적으로 유머러스하다. 전문가적 진지함을 깨뜨리는 방식이며 기록을 환기시키는 관찰의 쾌거이기도 하다. 과중한 업무와 유해한 약품으로 인해 몸이 쇠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의학적 소견을 내놓는 태도는 진지한데, 내담자가 이에 응하는 방식은 그 진지함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일단 각양각색의 난해한 사투리가 흘러나오며, 오랜 소음으로 시달린 난청으로 인해 엉뚱한 대답을 내놓아 상담가를 어리둥절하게도 하고, 게다가 의학적 소견엔 대체로 건성대거나 무심하다(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업무 외에 습관처럼 하는 술과 담배를 별로 끊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고통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 동일하게 감각할 수 없는 카메라 편의 우리는 유머러스하고도 특별한 상황에 사로잡힌다. 오랜 노동에 대한 인간적 겸허와 집중이 흐트러지는 특이한 경험이다. 감독은 노동자의 보건관리에 취약한 현장을 고발할 태세였을까? 첫 장면을 보자. 여기서 의학 전문의는 꽤 긴장감을 동반하여 등장하고는 예리한 질문을 하는 듯 하지만 이에 응대하는 여직원 말에 의하면 매해 변함없는 차트의 항목대로 체크하는 것뿐이다. 전문의는 '이 기관은 법률을 잘 지키고 계시네요'하고는 이내 사라진다. 이쯤 되면 인상에 남게 되는 것은 화면 제일 앞에서 단 한 번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약간의 벗겨진 머리를 정통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름 모를 관리자를 보여주는 카메라의 이상한 앵글이다. 카메라는 전문의의 편에 서는 듯 서지 않고 있으며 관리자의 무심함을 고발할 듯 고발하지 않고 있다. 감독은 특정 목적에 의해 세워놓은 카메라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관찰하다 이제 이 관찰 대상이 보인 미묘한 흐트러짐을 향한 미학적 관점을 고심하기 시작한다. 점점 영화는 감독과 함께 나아가는 스릴감 넘치는 실험이 되어간다.

전문가의 상담실 밖에 있는 카메라는 어떤 행위를 하는가? 이제 진정한 '고발'이 무엇인지 등장할 것이다. 공장을 패닝하는 카메라. 노동자를 찍거나 피하고, 정면으로 대하거나 숨는 이상한 카메라의 행위가 낯설다. 무척이나 강한 소음과 타는 듯한 빛을 내며 운동하는 기계와 그 사이사이에서 마치 보호색 같은 동일한 색의 공장복을 입고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마치 한 몸으로 움직이는 듯 육중하게 느껴진다. 전문가가 공장 현장을 답사하며 질문을 던지고 감독은 인터뷰를 하지만 소음에 묻혀 들리지 못하거나 힘겹게 느껴진다. 카메라는 이 현장에서도 기록과 관찰을 반복하지만 사실 보다 유동적이 된 카메라의 형식은 관찰을 향해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무언가를 찾는 카메라와 쉽게 잘려 미완성이 된 인터뷰 기록의 매치가 이를 증명한다. 여기서 특별한 것은 어떤 인터뷰 목소리들은 화면과 일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은퇴한 노동자의 집에서 진행된 감독의 인터뷰 장면에서도 간간히 그러하다. 소리와 이미지의 불일치에 대한 적극 지향이다. 담아야 할 소리에 대한 간절한 강조점, 혹은 불필요한 소리에 대한 과감한 노출의 이미지. 감독의 시청각적 실험은 계속하여 어긋나는 방식으로 충격효과를 노린다. 이 충격효과야 말로 진정한 고발정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고발은 집단적인 현장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한국 타이어 공장의 유해물질 조사 발표 현장의 갑작스런 마이크 소음에 대한 관계자들의 미묘한 소란, 그리고 노동자들의 보건 상담 사례를 촬영한 영상을 다시 그들에게 보여주는 공간의 웃음 현장이 있다. 영화는 조사 발표 내용을 거의 끊어버리고 공식적인 자리의 갑작스러운 마이크 소음에 대한 관계자들의 웅성거림에 주목한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 중 유독 난청이어서 다른 질문들에 모두 '소주 두병'을 연발한 노동자의 사례를 반복하여 보여준다(그 난청 노동자는 '기계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끼실 필요가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 기계라는 형태에 조응되고 적응된 노동자들의 몸을 지켜보는 것과, 기계에 낯설어하는 관리자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대비라면 억지스러울까? 이것이 의도한 대비는 아니겠지만 카메라가 관찰한 결과들은 대상에 대한 판단으로서의 고발이 아닌 순수하면서도 엄밀한 시청각적 고발들로 일종의 집단적인 경험, 충격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이제 영화의 1부가 끝난 것일까? 그렇다면 영화의 더욱더 이상한 후반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개인의 사례들로 집단적 충격을 이뤄낸 후반부의 성과를 가볍게 뛰어넘어 영화는 어느 네트워크 서비스 센터의 밤샘 근로자의 무심한 행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이 근로자는 막 이사라도 떠날 듯한 황량한 사무실에서 군것질을 부스럭대며 DMB폰으로 쇼 프로그램을 낄낄대며 보더니 갑자기 이상하게 개작한 대중가요를 혼자 흥얼대기 시작한다. 이 남자 왈 '부업으로 이 일을 한다'며 주업으로 만들었다는 영상을 감독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점검하는 시간에도 남자는 늘 뭔가 중얼거리고 노래를 하며 일을 즐겁게 하려는 듯하다. 그러더니 피곤한 듯 D사의 컴퓨터 박스 안에 들어가 쿨쿨 잠을 청한다. DMB에선 계속 연출된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 외에도 고장 난 하드웨어를 수집, 수리하는 한 고독한 남자를 보여준다. 그 곳은 마치 외딴 섬이나 우주선 안처럼 느껴진다. 이 남자 두 명을 찍은 장면은 앞서 공장의 노동자를 관찰한 신과 맞물리며 섬뜩한 지점을 노출하기도 한다. 노동자 집단을 대치한 이 노동자 한명 한명의 대비가 일단 흥미롭다. 노동자들이 사라진 공장에 멈춰버린 거대한 쇳덩어리와 노동자들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홀로 운동하는 보다 작은 기계와 깜박이는 수신호들, 황량한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업무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거대한 벨소리와 한밤의 고독을 달래는 텔레비전의 조잘대는 웃음소리. 현대사회의 노동 개념의 변화를 탁월하게 대비시키는 장면이다.

감독은 이 두 명의 단독 인터뷰 장면 사이에 어느 사진 동호회를 인터뷰한 장면을 편집해 넣었다. 처음으로 노동 현장의 바깥을 탐색한 것으로 공원의 풀숲과 산책로, 하늘과 바람을 담은 장면엔 처음으로 화면 밖으로부터 음악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1부의 피아노 공장 장면에서 악기를 닦는 소리인지 모르고 잠시 묘한 포스트 모던한 음악적 정취에 빠질 뻔도 하였다.) 감독은 이 야외장면에서 유일하게 시청각적 실험을 하지 않는다. 자연을 멀리서 담고, 인물들을 편안하게 관찰하며 여느 영화처럼 정서에 조응하는 음악을 흘려 넣는다. 다만 여기서도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다며 거의 렌즈를 무기처럼 종류별로 장착한 후 완벽한 결과물을 위해 노력하는 남자와 취미에 적합한 카메라를 가지고 보다 정서적으로 사진을 찍는 한 여자에 대한 대비가 있다. 감독은 이 여자의 경우에 조응할만한 화면을 더 찾는 것처럼 보인다. 공원에서 단체복을 입고 야구를 하는 아이들, 수영장에서 수영을 열심히 배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의 전체적인 풍경은 여유로움을 보인다. 이 여유로움은 점차 영화적인 무심함을 동반한다. 이 풍경에 대해 가할 더 이상의 실험이 없겠다는 듯 감독은 이 지점에 영화의 방점을 찍는 듯한 아름다운 음악을 넣는다. 두 시간이 넘도록 오직 현장의 소리와 꾸밈없는 이미지들의 편집 효과로만 진행해가던 영화의 팽팽한 긴장감이 일순간에 탁 풀어지는 듯한 단 한 번의 강력한 극적 효과다. 노동자 집단을 치밀하게 찍었을 때 그 미세한 틈에서 발견되는 환기들이 전반부의 충격이었다면 여가를 누리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관찰했을 때 오히려 단단하게 멀어져가는 풍경의 정취는 또 다른 아름다움의 충격이다.

영화의 엔딩은 이제, 관찰자들의 몫이다. 오뚝이처럼 쓰러졌다 일어나는 반복 운동의 기계적 유희. 볼링이라는 취미 활동과 전광판이라는 전기 시스템이 불을 밝히고 있는 도시의 밤, 전통적 개념의 노동이 막 끝난 시간에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여가를 즐기러 움직이는 사람들이 교차하며 그렇게 각자의 불빛을 켜고 각각의 운동을 시작한다. 이 사회에 대한 어떤 궤도가 하나가 그려진 것 같다.


>> '제 1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됩니다!




* 작품정보

보라 이강현 | 2010 | 136min
 
영화는 산업안전보건법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현장보건관리를 1 여간 촬영한 기록물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