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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2011-05-06 기사원문보기 >>

한국에서 '비혼 부모'로 산다는 것
이철씨와 지민씨는 좋아서 함께 살지만, 결혼식이나 혼인 서약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제도에서 벗어나 개인을 지키고, 다양하게 함께 살기를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처럼 한국에서 비혼으로 사는 게 가능할까?



여자는 남자가 해를 등지고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에 반했다. 그 남자는 ‘까맣고 성깔 있어 보이는 여자애’랑 함께하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훨씬 재밌어질 것 같았다. 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난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복닥복닥 보통의 연인이 그렇듯 그들 역시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6년째 연애 중’이던 어느 날, 그들은 친구들을 술집으로 불러 모았다. 같이 살기로 한 결심을 선언하는 자리가 꾸려졌다. 굳이 예식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을 조촐한 파티였다.

서울 남산 자락에 구한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단출한 방이었다. 대학 시간강사인 남자 이철씨(36)와 영화감독인 여자 지민씨(29)의 시작은 그러했다. 좋아해서 함께 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온전히 집중하기로 했다. 지민씨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가족이라는 숭고한 이데올로기가 의심스러웠고, 그 따뜻함 뒤에 숨어서 개인을 억압하는 제도가 못마땅해서였다. 나와 너의 만남과 사랑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만남 속에서 개인은 쉽게 망가졌다. 이혼한 부모를 통해 충분히 ‘학습’되고 ‘검증’받은 일이었다.


이철씨(왼쪽)와 지민씨에게 아기가 생기면서 두 사람은 국가와 제도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제도를 따라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지민씨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세상에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살고 싶었다. 그에게 ‘비혼’은 윗세대의 언니들이 그러했듯, 혼인이라는 계약에 대해 정치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며 박차고 나선 결기 찬 ‘독신 선언’이 아니었다. 제도에 대한 실험이자, 개인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살기를 고민하는 일이었다.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이 사라진 가정

이씨는 그러한 지민씨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존중했다”. 그 탓에 성당에서 세례를 받는 일조차 거절당해야 했다. 제도상 혼인이 아닌 상태로 여자와 살기 때문에 ‘간음의 죄’를 짓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민씨와는 다소 결이 다르지만, 그 역시 결혼은 고려해본 적이 없다. 가난한 집의 장남은 ‘보통의 결혼식’에 들어가는 돈을 상상하기 힘들었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며, 동생은 장애가 있었다. 삶은 좁았고, 시간은 없었다. 그렇다고 ‘사랑’까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이 사라진 두 사람의 생활은 그래서 즐거웠다.

그러나 어느 날, ‘두 개의 선’이 두 사람의 인생에 개입했다. 임신 테스트기에 나타난 선명한 두 줄, 임신을 알리는 명징한 신호였다. 당황스러웠지만 두 사람은 침착하게 결정을 내렸다. 아이를 낳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의 성을 아이에게 붙여주마고 다짐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동거를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유난스럽다’ ‘이기적이다’ 같은 의견 뒤에는 “그냥 남들 하는 대로 살아”라는 일종의 강요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역시 ‘정상’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기 힘들었다. 타인의 시선은 늘 집요하게 정답을 요구했다. 그 불안을 극복해나가며 열 달을 보냈다. 이씨는 지민씨와 함께 입덧을 경험하고 젖몸살을 앓았다. 남자는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결혼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

지난해 4월, 태어난 지 고작 엿새 된 아이는 ‘초응급’ 수술을 요했다. 병명은 ‘선천성 장 회전 이상’이라고 했다. 장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서 생기는 증상이었다. 선천성 이상아에 대한 정부 지원제도(보건복지부)가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했다. ‘정상 가족’이어야 한다는 것. 직원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가족이 뭔지는 아시죠? 엄마·아빠·아이로 이루어져 있어야 합니다.”

고작 서류일 뿐인 혼인신고서와 출생신고서를 쓰는 데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가난한 커플에게 별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남성의 성씨를 중심으로 가족공동체가 구성되는 시스템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택과 고민은, 국가와 제도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별무소용이었다. 제도는 보편과 상식의 자리를 꿰차고 있었고, 거기에 ‘개인’의 자리는 없었다.


이철씨와 지민씨는 가족이라는 숭고한 이데올로기가 의심스러워 비혼으로 살고자 했다. 왼쪽 그림은 두 사람의 캐리커처.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러한 시도가 ‘비혼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이 극복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마저 다시 성찰해보려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아이의 증상을 치료할 수 있는 ‘안전망’이기도 했지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기도 했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혼인신고였어요. 그처럼 별것 아닌 형식적인 문제이지만, 드러나는 건 항상 제도 안의 선택인 것 같아요. 비혼에 대해 더 끊임없이 그리고 깊이 고민해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죠. 비혼과 부모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싶어요.”

이들의 경우처럼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눈을 조금만 나라 밖으로 돌려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의 저자 목수정씨는 프랑스에 살면서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동거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e de solidarite:PACS)’이라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출산 파업’이 지속되면서 출산율 저하로 대다수 나라가 비상사태에 호들갑을 떨 때에도, 프랑스는 출산율 2.01명을 유지하며 여유로웠다.


그뿐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복지 시스템의 전제를 ‘가족’에 두지 않는다. 이들 국가 제도의 기본 전제는 ‘노동자’에 방점을 찍는다. 이처럼 관점을 조금만 옮기면 개인의 결혼 여부와 성별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비혼, 다큐멘터리 영화로 찍어 큰 호응

그렇기 때문에 이철씨와 지민씨는 자신들이 보내온 시간을 오롯이 카메라에 담았다. 제목은 <두 개의 선>이라고 지었다. 결혼과 비혼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이자,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두 개의 시선, 그리고 부모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이라는 두 개의 갈등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저 유명한 68혁명의 구호를 빌려오자면, ‘개인적인 것은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패담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제도에 균열을 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개의 선>을 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지난 4월 열린 2011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되었다. 반응은? 두 차례 모두 매진이었다. “저희가 유명한 영화감독도 아니고, 사실 놀랐어요.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저희 같은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왜 안 하고 싶은지, 그런 질문에 대한 답들이 명확하지 않을 뿐이죠. 그 답을 찾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관객석을 메운 게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