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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 아니게 해주세요, 제발"… 임신이 동거의 최대 고민




ㆍ한국에서 ‘동거’한다는 것


“생리가 하루라도 늦어지면 불안했다. 콘돔을 쓰고 피임약을 먹어도 그랬다. 임신 테스터 결과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도 늘 간절한 기도를 했다. ‘이번만 아니게 해주세요, 제발!’ 두 개의 선이 나타났을 때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모든 것은 붉고 진한 두 개의 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만나 연애한 지 어느덧 10년. 룸메이트와 연인으로 한집에서 살던 다큐멘터리 감독 지민씨와 시간강사 이철씨는 3년 전 지민씨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받은 마음의 충격을 자신들이 만든 영화 <두개의 선>에서 이렇게 그렸다.


지나온 삶을 담아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속에서 연애 6년째 이철씨가 청혼하자 지민씨는 동거를 제안했다. 지민씨는 결혼 제도의 틀에 구속되고 얽매이는 삶을 왜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컸고, 이철씨는 장애를 가진 동생과 살면서 막연히 ‘결혼은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함께 살기로 한 지민씨와 이철씨는 행복한 일상을 보내지만 부모나 친구들은 두 사람에게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그런 어느날 이 커플에게 의도치 않은 사건이 생겼다. 동거한 지 2년 만에 임신 테스터에 나타난 두 개의 선. 아이를 위해 혼인신고를 할 것인가, 지금처럼 밀고 갈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두 사람은 치열하게 고민한다. 긴 갈등 끝에 둘은 혼인신고를 했고, 아이는 이철씨의 성을 따랐다.



“모든 것은 붉고 진한 두 개의 선(임신 테스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에 출연한 지민씨(오른쪽)와 이철씨가 6년 연애 끝에 동거를 시작한 2008년, 지민씨의 생일 파티를 하고 있다. | 시네마달 제공



▲ “이기적이고 무책임” 주변서 눈총

임신 공포에 낙태·입양 공화국 오명

주택청약·소득공제 등 곳곳서 차별


동거 커플에게 끊임없이 심리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임신이다.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는 미혼모의 자식이 된다. 영화 <두 개의 선>의 커플이 보여준 것도 임신 후에 겪은 공황감과 혼란이다. 현실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낙태를 하는 커플도 많다. 초저출산 시대에 동거 커플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 7년간 남자친구와 동거한 윤영희씨(35)는 “출산도 적절한 나이가 있어 아주 가끔은 여자로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하지만 전통적 가족제도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는 건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어서 마음을 접곤 한다”고 말했다. 동거 커플들은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적 시선에도 고민을 토로한다. 스스로 동거하고 있음을 밝히는 커플이 많지 않은 것도 굳이 밝혀서 좋을 게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회사원 이정희씨(32)는 동거하는 남자친구(33)와 각자의 원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골에서 가끔씩 상경하는 부모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씨의 부모가 마포에 사는 딸을 만나러 상경할 때마다 최씨는 옷가지를 승용차에 싣고 사당동에 있는 원룸으로 피하고 있다. “동거 말고 그 후에 합의된 계획이 없는 두 사람이 아직 말도 꺼내지 못한 부모님과 부딪칠 필요가 있을까요?” 이씨는 “동거 사실을 알려준 친구도 한명뿐”이라며 “지금은 누구의 간섭 없이 편안한 동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거 커플이 현실에서 부딪치는 또 하나의 벽은 ‘제도적 차별’이다. 신혼부부 특별청약을 실시하는 보금자리주택은 혼인신고를 한 가족에게만 청약자격이 주어진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만 35세 미만자는 국민주택기금에서 전세자금 대출이 불가능하다. 동거 파트너가 병원에서 수술받을 경우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많다. 또 한쪽이 사망하거나 관계를 정리할 때 상속이나 재산분할에서도 차별받는다.


자칭 페미니스트인 윤숙자씨(44)는 10년간 동거하다가 얼마전 혼인신고를 했다. 신혼부부 특별청약을 실시하는 보금자리주택에 청약하기 위해서다. 윤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것이 생활 속에서 많다”며 “오랫동안 부부처럼 살아왔는데 손해보는 게 너무 많아 혼인신고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혼이 아닌 동거 커플은 연말정산 소득공제에서도 부양가족에 대한 인적공제가 제공되지 않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영철 연구위원은 “사회적으로 동거 커플이나 연애커플의 출산을 용인하지 않아 낙태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나올 만큼 해마다 많은 낙태가 이뤄진다”며 “미혼모들도 현실에서 부딪치는 사회적 차별이 커 결국 아이를 입양보내는 경우가 90%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거 가정에 대해서도 사회가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제도적 보호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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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선 지민| 2011 | 82min

"결혼, 그거 꼭 해야 해?"
긴 연애 끝에 동거를 하던 지민과 철. 
어느 날 준비 없이 찾아온 임신테스터의 두 줄이 그들에게 새로운 고민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