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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바람으로 이웃집 기웃기웃

얼토당토 않은 꿈이 현실이 된다


[마을의 귀환 17]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2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아이들이 잠든 밤 어른들의 잔치가 시작된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자락에 공동주택을 꾸려 살고 있는 왕자(이승현), 맥가이버(강석필), 뚝이(고창석), 토끼(우연창) 부부가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9월 29일 오후 공동주택 지하1층 공동작업실에서 함께 술잔을 부딪히고 있다. "오가는 게 귀찮아서 함께 산다"는 이들에겐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이런 술자리가 공동주택을 꾸려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 유성호




"근데 뚝, 수염은 왜 깎았어?" 

"새로 공연하는데 수염을 붙여야 해서…. 내가 다 낯설다니까. 근데 수염 깎으니까 사람들이 못 알아봐서 정말 좋아."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뚝(43)이 "크하하" 웃었다. 밖에서는 영화 <의형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흥행성공에 이어 예능프로에도 진출한 '영화배우 고창석'이라 불리지만,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자락에 자리 잡은 공동주택선 '2층집 뚝'이다. 부인 다람쥐(이정은·40), 딸과 함께 그는 2009년부터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다. 호호(홍형숙·51)와 맥가이버(강석필·43), 모짜렐라(서복경·43)와 토끼(우연창·44), 공주(곽은민·44)와 왕자(이승현·44)네는 뚝과 다람쥐의 이웃이며 가족이다. 


계기는 단순했다. "얼굴 보러 오가는 게 귀찮을 정도(다람쥐)"로 네 가족은 자주 모였다. 8년 전쯤 성미산마을 공동육아시설에서 만났을 때부터 유독 마음이 잘 맞았다.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며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일상이었다. 자연스레 함께 집을 짓고 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했다. 대지 198㎡(약 60평)에 83㎡(25평) 크기의 집을 지으려 했지만, 적당한 가격대의 땅이 없었다. 포기할까 고민하던 찰나, 산자락 바로 밑에 있는 곳이 비교적 저렴하게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8년 2월, 얼른 계약을 했다. 이 기회를 잡으려다 보니 집도 땅도 애초보다 넓어졌다. 


산 하나를 다 넘은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다. 막상 땅을 파보니 거대한 돌덩이가 그 위치에 버티고 있었다. 돌을 치우는 데에만 수백만 원이 들어갔다. 때마침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 자잿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어올랐다. 모짜렐라는 "세 번 정도 포기할 뻔했다"고 회상했다. 


거대한 돌덩이가 있던 자리에는 네 가족이 함께 쓰는 공용공간이 생겼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탁구를 치거나 책을 읽으며 함께 어울린다. 독립영화 <경계도시>를 만들었고, 최근 남편 맥가이버의 감독 데뷔작 <춤추는 숲>을 제작한 호호가 작업실로 쓰는 장소도 있다. 연극배우 다람쥐는 그 옆방을 연습실로 사용 중이다. 


공동육아에서 대안학교까지... 아이들과 함께 크는 마을 


▲  서울 마포구 성미산자락에 공동주택을 꾸려 살고 있는 다람쥐(이정은.왼쪽 셋째)와 공주(곽은민.오른쪽 셋째)이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9월 29일 오후 공동주택 지하1층 공동작업실에 잔치상을 차렸다. 호호네 아들 생일상이기도 하고 연휴를 맞아 농장체험을 잠시 쉬고 집에 돌아온 모짜렐라네 진성이(가명)를 환영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 유성호



▲  독립영화 <경계도시>를 제작한 강성필씨는 성미산 공동주택에서 맥가이버로 불린다. 아이들과 팔씨름을 즐기는 맥가이버의 표정이 익살맞다.

ⓒ 유성호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9월 29일 늦은 오후, 공동주택 지하 1층 공용공간에서 파티가 열렸다. 잘 익은 삼겹살과 조개구이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로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며칠 전 생일이었던 호호네 아들(12)과 두어 달 만에 집에 돌아온 모짜렐라네 아들(14)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성미산학교' 7학년인 아이는 올 봄부터 1년 동안 강원도 평창군의 한 농장에서 지내며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는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공동주택에 사는 나머지 네 아이 모두 성미산학교 학생이다. 


성미산마을은 1994년 두 개의 공동육아협동조합에서 출발했다. 이후 '마포두레생활협동조합'과 공동육아어린이집이 들어섰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나와 학교에 진학할 시기에 이르자 부모들은 자연스레 '내 아이도 입시경쟁에 내몰려야 할까'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공동육아와 생협은 '조금 다른 삶'이란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 꿈을 지키기 위해 엄마아빠들은 힘을 모아 12년제 대안학교, 성미산학교를 세웠다. 


"한 번은 애들이 집에서 3층 아저씨가 보이니까 '토끼이~'하고 소리쳤는데, 자긴 줄 몰아서 한참 있다가 두리번거렸대요." 

"나도 길가다가 우연히 남편을 봤는데 이것저것 불러도 뒤를 안 돌아봐서 나중에는 '맥가이버!'라고 불렀어요." 


다람쥐와 호호가 깔깔거리며 얘기한다. 어린이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성미산마을 아이들은 '아저씨, 아줌마, 선생님' 같은 호칭 대신 어른들을 별명으로 부른다. 존댓말도 쓰지 않는다. 아이와 선생님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처음에 별명을 짓는 일조차 어색하던 어른들도 이제는 "(별명 부르는 데에) 익숙해지니까 정말 좋다"고 입을 모은다. 별명은 부모와 아이뿐 아니라 마을 주민끼리도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는 마법을 부렸다. 


애들은 속옷 바람으로 이웃집 찾아... "가족이 되어가는 느낌" 


▲  가족에게 고기 굽는 연기가 가지 않도록 테라스에서 고기를 굽고 있던 아빠 뚝(고창석)에게 딸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어주고 있다.

ⓒ 유성호


▲  불도 켜지 않은 테라스에서 뚝(고창석)이와 맥가이버(강성필)가 가족을 위해 고기를 굽고 있다.

ⓒ 유성호



나이와 직업에 거리까지 사라진 공동주택 사람들의 관계는 한층 더 진하다. 아이들은 심심하면 속옷 바람으로도 이집저집 기웃거린다. 아침밥이 급할 때면 다른 집에 후다닥 달려가 밥을 얻어오는 일도 다반사다. '이웃' 이상으로 가까운 모습이다. 뚝은 "동료 배우들도 공동주택에서 사는 걸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다른 집 아저씨가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선 현관 번호 키를 잘못 눌러서 삐삐 소리가 날 때가 있어요. 처음엔 놀랐는데 이젠 익숙해져서 '아 힘든 일 있었구나'하고 넘기고, 다음날 보면 '멀쩡해?'라고 묻고 그래요. 가족이 되어가는 느낌이랄까(모짜렐라)." 


함께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서로 고민을 털어놓거나 조언을 해줄 때도 많다. 호호는 "'3층 애가 우리 집에 와보니 이렇더라'고 말해주는 등 부모가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면 공유한다"고 말했다. 


공동주택 밖에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도 이들에게는 소중하다. 성미산마을은 '번개(갑작스러운 만남)'가 잦다. 밴드, 드럼, 요가 등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취미활동 모임을 많이 꾸리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1번씩 열리는 마을 축제와 성미산학교 운동회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 그물망처럼 얽힌 다양한 마을 내 모임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고 있다. 


2003년과 2010년 겪은 두 번의 싸움 역시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끈이었다. 2003년 1월 서울시는 성미산에 배수지를 짓겠다며 기습적으로 벌목을 강행했다. 성미산 정상은 붉은 살을 드러냈고, 시에서 고용한 용역업체와 포클레인에 맨몸으로 맞선 주민 여러 명이 다쳤다. 어렵게 지켜낸 성미산은 2010년 홍익재단이 남사면 숲을 밀어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초중고를 세우겠다고 발표하면서 또다시 위기에 처한다. 비록 성미산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지만, 남은 지역을 생태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제각각 흩어진 섬 같던 사람들이 하나로 모인 마을에서 주민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모짜렐라는 "사회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나면 드는 생각이 '이따 마을 가서 풀어야지'"라며 "마을에 들어와서 동네 아줌마와 수다를 떨거나 밴드나 연극 등 여러 활동들을 하다 보면 정서적으로 편해진다"고 말했다. 맥가이버는 얼마 전 한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혹시 성미산마을 주민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맥가이버가 이유를 되묻자 그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당신 표정에서 보였어요.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얼굴이 편안하거든요." 


비판도 과제도 있지만 '얼토당토않은 꿈'으로 해결하는 사람들 


하지만 '중산층들만의 공동체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토끼 역시 "공동주택을 짓는데 다 합쳐서 21억 원 정도 들였다"며 "(공동주택을 짓고, 마을에서 살아가는 일이 손쉽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호호와 모짜렐라는 '이런 집 짓고 싶은데 참 꿈 같다'는 기자의 말에 "우리 집은 은행이 지어줬다"는, 진심 섞인 농담으로 여러 번 대꾸했다. 


성미산학교를 '귀족학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비인가학교로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이곳은 매달 부모들이 일정금액씩 부담하는 비용으로 운영되고 있다. 5학년 자녀를 둔 호호는 월 48만 원 정도를 낸다. 하지만 "다른 가정이 사교육에 쓰는 비용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호호는 "성미산마을이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말은 절반만 옳다"며 "여건의 차이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마을이 점점 넓어지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양해지는 것은 새로운 고민거리다. '육아공동체'로 시작한 곳이다 보니 지금껏 마을 활동은 가족 단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결혼을 안 했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 자녀가 없는 사람들의 마을 활동이 상대적으로 제약받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래도 마을 안에서 이런 분들을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게 또 하나의 가능성 아닐까요(호호)?"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을 만들고, 가족이 필요해 공동주택까지 지은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힘은 어디에 있는 걸까. 다람쥐는 "이 동네 사람들은 얼토당토않은 꿈을 많이 꾼다"고 말했다. 모두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꾸는' 얼토당토않은 꿈은 현실이 된다. 성미산마을은 오늘도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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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숲 강석필2012ㅣ105min

‘성미산마을’은 서울 도심에 있는 마을공동체다. 한 교육재단에서 성미산을 깎아 학교를 이전하겠다고 나서면서 마을에 긴장감이 돈다. 마을의 중심인 성미산을 지키는 싸움은 파란만장하지만, 성미산 사람들은 남나르게 풀어낸다. "낡은 가치를 뒤집는 유쾌한 항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