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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랑 뜨레이 (김태일, 2012)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그것도 뭔가 내가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공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일수록 기록하고 있는 인물이나 사건, 상황에 많은 의미들을 부여하게 된다. 소소한 내 기억이나 가족의 사연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나는 이 특수한 이야기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현장의 사실들을 미화하거나 작위적으로 그 의미들을 과장하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물론 창작자로서 재 현실들을 재가공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운명과도 같은 것이겠지만 그 정직한 수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스러우며 풀릴 것 같지 않은 숙제로도 보인다. 이런 고백으로 이 글을 시작하는 건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김태일 감독의 <웰랑 뜨레이>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광주민주항쟁 당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오월愛>를 시작으로 세계 민중사 10부작을 시작한 김태일 감독과 그의 가족(이하 “상구네”)은 그 첫 번째 나라인 캄보디아로 떠난다. 하지만 언어가 통하지도 않는 생소한 지역에서 누군가를 찾아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개월이 지나고 상구네는 우연히 뜨레이 가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생존을 위한 뜨레이 가족의 노동만을 볼 뿐이며 이들과 같은 노동을 하며 살고자 하는 상구네의 일상만을 볼 뿐이다. 상구네가 예수교를 강요하지 않는 가족임을 알고 뜨레이 가족은 안심하지만 상구네는 여전히 이들의 삶의 역사를 카메라로 찍어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자화 되지 않은 체 구술로만 전승되는 그들의 전통과 역사를 존중하며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는 그들의 삶의 터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묵묵히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설정하고 찍어야 할 텐데 상구네는 영화적 대상과의 관계에서의 한계만을 고백할 뿐이다.


솔직히 말해,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수소문 끝에 찾아낸 다음, 그들의 동의하에 적당하게 일상을 기록한다. 다음, 적당한 시점에 좋은 배경에 앉혀서 현지 통역들과 함께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눈물 찔끔 나게 유도해서 들었을 것이다. 영화의 서사를 위해 시간의 흐름이 있는 역동적인 사건이나 상황 또한 계획적으로 찍었을 것이다. 


<웰랑 뜨레이>는 이 기존의 방식과 닮아 있지 않다. 아니 애초에 방식이라는 것에 신경 쓰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가족과 가족이 첫 대면하는 그 순간으로부터 변화해가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이는 어쩌면 영화적 대상을 카메라로 기록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면대면으로 만나는, 실존하는 사람들을 내 몸으로 기억하고 싶어 하는 태도의 결과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함께한 자녀들에게 부끄럼 없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인민들의 살아있는 삶의 모습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뜨레이 가족의 삶을 스크린 안의 이미지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실재하며 현존하는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다큐멘터리에서 현실과 사실이 나를 자극하는 진실이 되는 순간을 맛보게 되었다.


민중사 10부작을 통한 상구네 가족의 변화과정이 궁금해진다. 특히나 두 자녀들이 성장해가는 과정과 그 과정 안에 부모와 함께 그려낼 민중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긴 여행을 떠나며 첫 여정지인 캄보디아 인민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세계의 인민들에게 ‘우리 이 마음과 태도로 시작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며 “웰랑?(안녕?)”이라고 상구네 가족이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이 인사가 어떻게 진화, 발전될 지 더불어 그 깊이를 가져갈지 기대된다. 상구네 가족의 앞길을 큰 박수로 응원하고 싶다.


/ 글: 문정현(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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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웰랑 뜨레이 김태일2012ㅣ80min

뜨레이는 아내 슬리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며 다섯 아이와 살고 있다. 온 가족이 메달리지만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벼 수확량. 고된 노동을 해도 자급자족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 현실이지만 벼농사는 절대 포기 하지 못한다는 슬리는 올해도 새롭게 벼농사 일을 시작한다.



  1. hyou 2012.10.25 09:0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고 싶은 영화였지만 예매를 못해 아쉽게ㅜ못본영화였는데.. 볼수있는기회가 또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