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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2012와 불씨들_다섯 번째 불씨, 김태일 감독


(SIFF2012 특별 초청작 <웰랑 뜨레이> 상영)






김태일 감독은 다큐멘터리 공동체 ‘푸른 영상’ 출신으로 1993년 <원진별곡>으로 데뷔해 꾸준한 활동을 해오다가 지금은 민중의 세계사 10부작을 작업 중이다. 2010년, 광주 5월 항쟁을 다룬 시리즈의 첫 작품 <오월愛>을 완성해 그 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큰 호평을 받았다. 이번 서울독립영화제 특별 초청작인 <웰랑 뜨레이>는 민중의 세계사 2번째 작품으로 감독의 온 가족이 제작에 참여해 캄보디아의 소수 민족인 부농족 ‘뜨레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따뜻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역사와 인간을 탐구하는 김태일 감독을 성북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Q.<웰랑 뜨레이>는 <오월愛>에 이은 ‘민중의 세계사’ 10부작 중 2번째 작품이다. 먼저 ‘민중의 세계사’ 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푸른 영상’에서 나와 귀농을 위해 진주시에 머무를 때 시립도서관을 다니며 故 권정생 선생님의 소설인「 한티재 하늘 」을 읽게 되었다. 원래는 구한말부터 1980년 5월까지의 이야기를 10권의 책으로 만들 예정이었는데 일제 강점기를 다룬 2권까지만 쓰시고 타계하셨다고 한다. 이 작품은 특정한 주인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우리 조상의 삶의 모습을 다양한 시점으로 보여주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무언가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날 우리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올바른 역사관과 사회관을 심어주는 일의 필요성을 느꼈다. 흔히 접하는 세계사는 대부분 강대국의 관점에서 쓰여있지만, 우리 역시 제국주의의 침략 등을 겪은 약소국이다. 우리와 같이 역사적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는 세계사를 만들고 싶어 ‘민주의 세계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료를 찾으며 준비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고 탄생한 첫 작품이 바로 광주 5월 항쟁을 다룬 영화 <오월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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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월愛> 제작 당시 공동 작업자이자 아내인 주로미 씨와 광주 이야기를 ‘민주의 세계사’ 시리즈의 첫 번째로 할지, 마지막으로 할지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고 들었다. 


원래는 1편으로 <웰랑 뜨레이>가 기획되어 있었다. 내가 사는 아시아에서 출발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아시아로 돌아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광주가 마지막이었지만, 본격적인 첫 해외작업이라는 불안감과 더불어 통역 섭외 등에 들어갈 제작비 조달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10부작의 첫 작품은 만드는 사람의 관점과 의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에 고민 끝에 비교적 잘 알고 있는 광주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광주에서 첫 작업을 했고, 만약 광주를 마지막에 다뤘다면 약 20년 정도 후에 촬영했을 텐데 그때쯤에는 5월 항쟁과 관련된 많은 분이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Q. <웰랑 뜨레이>를 촬영하면서 세워놓은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나? 


‘한 가족에만 집중하자’였다. 캄보디아 사회, 그 속의 부농 마을을 다 훑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한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들의 입장에서 기록하자고 기획했다. 그래서 ‘뜨레이’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인터뷰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한 마을에서 촬영하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뜨레이’ 가족만 해도 함께 생활하는 사위가 3명이나 됐다. (웃음) 혹여나 그들도 비슷한 비중으로 찍히고 싶어 할 수도 있고, 이 때문에 가족 간에 괜한 불편함이 생기지 않을까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읍내에서 지낼 때도 베트남전 당시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경찰관을 인터뷰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지만 참았는데 그렇다고 아주 타인을 인터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부농 족의 구술문화가 문자교육을 받으며 그들의 고유한 말을 잃어가는 아픔을 보여주고 싶어 한 달을 넘게 교장 선생님을 섭외하여 인터뷰에 성공했지만, 결국 편집과정에서는 빠지게 되었다. 촬영 전에는 원칙을 세워도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불안감이 생겨, 되는 대로 많이 찍어 놓자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Q. 미리 촬영대상을 정하고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작진이 직접 가서 부딪히며 체험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인데, 왜 이런 방법을 택했는지 궁금하다. 


해외촬영의 맹점은 사전에 현지 전문가나 통역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고, 심지어 인물까지 섭외한 다음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실제 자기 시선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설사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직접 우리 눈과 몸으로 만나서 인물을 선정하자고 기획했다. 아는 말은 인사말인 ‘웰랑’ 밖에 없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혼자서 촬영을 진행했다면 내 인상 때문에 힘들었을 수도 있었는데, (웃음) 두 아이들과 함께 갔기 때문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촬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캄보디아에서 촬영 증일 때에도 해외, 한국방송국에서 현지 안내인을 통해 모든 섭외를 완료한 상태에서 일주일을 넘기지 않고 촬영을 마치는 모습들이 싫었고, 우리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부농 족의 모습을 직접 부딪치며 담고 싶었다. 



Q. 영화 초반부에는 뜨레이 가족을 통해 캄보디아 역사의 아픔을 보여주려는 듯 보였는데, 진행될수록 그들의 현재 삶에 더 큰 관심을 초점을 맞췄다.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직접적인 인터뷰 보다는 그들의 현재 삶에 집중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원래는 현재 삶의 모습을 담으면서 그 속에 역사적 고통도 함께 담고 싶었다. 촬영지로 고산지대이자 밀림지대인 몬돌끼리 지방을 택한 이유 중 하나도 내전 당시 폴 포트나 크메르루즈가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폴 포트 호위병의 대부분이 밀림을 잘 아는 현지 소수 민족 출신이었다고 한다. 뜨레이 가족과 친해지고 두 달 정도 지나 인터뷰를 위해 통역을 불렀는데 이분들이 과거 이야기를 하기 꺼린다고 하더라. 왜 아픈 역사에 대해 얘기하지 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에 아쉽긴 했어도 촬영 중간쯤 현재의 삶에 집중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작업할 ‘민중의 세계사’에도 꼭 직접적으로 역사의 아픔을 담지 않고 현재 삶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Q. <웰랑 뜨레이>의 실제 촬영분량과 어떤 기준으로 편집했는지 궁금하다.


총 촬영 분량은 2테라바이트 정도였고,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무얼 만들기 위해서 이곳에 와서 촬영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다.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애초 목표했던 작업형태가 있지만 보통 자기가 생각했던 내용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려해야 한다. <웰랑 뜨레이>는 올해 5월 하순에 촬영을 마친 후 10월 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했기 때문에 편집기간은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한다. 이런 일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조연출이기도 한 아내 주로미씨와 작업에 대한 고민을 계속 나누며 방향을 계속 다듬어 나갔기 때문이다. 극영화가 촬영 전 이런 고민을 한다면, 다큐멘터리는 편집할 때 마치 시나리오를 쓰듯이 고민을 해야 한다.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퍼즐을 맞추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웃음)



Q.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일 때 관객반응은 어땠나?


요새 한국사회가 워낙 살기 힘들다 보니 왜 굳이 캄보디아 소수민족을 찾아가 이런 다큐멘터리를 찍었는지 반응이 많은 것 같다. (웃음) 누군가의 표현처럼 자본주의는 ‘폭주 기관차’라 볼 수 있는데, 어쩌면 그 기차에 마지막에 탑승한 사람들이 부농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을 한다면 부농인이 굳이 자본주의를 쫓아오지 않아도 되는데 결국 그들이 마지막 승차를 하고 만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에 대해 성찰해보는 것이 조그만 바람이었는데 우리 현실도 어렵다 보니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Q. 촬영 후 뜨레이 가족과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나중에 알고 보니 뜨레이 가족은 부농 사람들 중에서도 정말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더라. 캄보디아에서 뜨레이 가족을 만난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지금도 한 달에 세 번씩은 통화한다. 출국할 때도 캄보디아에서 타던 오토바이를 징표처럼 생각해달라고 하며 주고 왔다. 최근 슬리가 출산을 했는데, 우리처럼 산후조리를 따로 하지 않고 며칠 쉬고 바로 일터로 가기 때문에 하혈을 많이 해서 병원에 입원했다. 너무 걱정돼서 프놈펜에 거주하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NGO 병원에 데리고 가서 다행히도 지금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뜨레이 가족이 아직은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선교사를 통해 DVD를 보내놓아 곧 볼 수 있을 것 같다.



Q.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웰랑 뜨레이>를 보게 될 관객들에게 직접 이 영화를 소개해 달라.


유럽이 500년에 걸쳐 자본주의화 되고, 한국사회는 그 500년을 50년으로 단축하여 정착했지만 부농인은 우리보다 훨씬 빨리 정착해야만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 이들은 고대에서 중세, 근대와 현대까지 단계적으로 넘어온 게 아니라 고대에서 바로 현대적 삶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정신적, 문화적인 트라우마가 크다. 이들의 삶을 따듯한 시선으로 담아냈고 부농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너무 딱딱한가. (웃음)



Q. ‘민중의 세계사’ 세 번째 작품에 대한 정보와 진행 상황이 궁금하다.


다음 촬영장소는 팔레스타인이고, 계속 자료조사 중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우리나라에 팔레스타인 관련 단체들과 직접 팔레스타인을 다녀온 분들을 만나서 세부적인 루트를 파악한 뒤 내년 상반기에 어느 정도 기금을 마련하고 바로 출국할 예정이다. 



Q. 서울독립영화제2012에서 기대되는 작품이나 섹션은?


서울독립영화제 사전 감독모임에서 정말 오랜만에 ‘푸른 영상’에 함께 있었던 박세호 감독을 만났다. <영매> 이후 오랜 공백을 깨고 돌아온 정치 다큐멘터리 <거대한 대화 對話>가 개막작으로 상영된다고 하는데,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지 궁금해서 꼭 개막식에서 볼 생각이다. (웃음) 



취재 / 정현욱(서울독립영화제2012 관객심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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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웰랑 뜨레이 김태일2012ㅣ80min

뜨레이는 아내 슬리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며 다섯 아이와 살고 있다. 온 가족이 메달리지만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벼 수확량. 고된 노동을 해도 자급자족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 현실이지만 벼농사는 절대 포기 하지 못한다는 슬리는 올해도 새롭게 벼농사 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