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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독립 다큐멘터리의 마력

 

황윤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 <작별> 연출)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틀에 짜인 일상, 성과와 경쟁에 대한 강조, 상사의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조직체계. 출근과 함께 시작된 위경련과 편두통은 회사를 다니는 1년 내내 계속됐다. 그렇게 평생을 살긴 싫었다. 사표를 냈다. 남들은 나를 무모하다 했지만, 내겐 ‘가슴 뛰는 삶’을 찾아 떠난 모험의 시작이었다.


대책 없이 백수의 바다를 표류하던 시절, 부산국제영화제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보았던 몇 편의 영화가 내 삶을 바꿔놓을 줄이야.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받은 할머니들의 삶에 관한 <낮은 목소리> 등 몇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들을 보면서, 가슴속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처럼 중요한 이야기들을 왜 학교와 TV에서는 듣고 볼 수 없었을까? 


진실이 표현되는 방식 또한 방송 다큐멘터리와는 전혀 달랐다. 독립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삶과 숨결을 보여주었다. 어두운 극장 한 구석에서 받은 자각과 감동. 머리는 깨어나고 가슴은 뜨거워졌다. 열혈 관객으로 영화제를 찾아다니던 나는,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와의 인연은 그렇게 우연처럼 시작되었고, 필연처럼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독립영화 방식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산다는 건 고생과 가난을 자초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다큐멘터리라는 늪에 빠진 내 운명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살면서 배워야 할 것의 5할은 유치원 이전에 배웠고, 나머지 5할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만들면서 배웠기에.


나의 1년 달력은 영화제 일정으로 빼곡하다. 모든 영화제에 다 가진 못하지만, 나는 바쁜 일정을 쪼개고 모아서 영화제 순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영화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다른 감독들의 작품을 챙겨보는 건 당연한 과제이지만, 여전히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나는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열 편의 영화를 보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봄나들이를 반납하고, 집과 서울을 기차로 왕복하며 달린 발품은 결코 아깝지 않았다. 성미산을 지키는 마을 공동체 사람들의 유쾌한 항쟁기 <춤추는 숲>,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필사적으로 답을 찾아 헤매는 감독에 관한 사적 다큐 <우는 여자>, 오랜 세월 갈등하던 아버지를 이해해 가는 딸의 이야기 <아버지의 이메일>, 자본의 침입과 이상기온에 갈수록 힘들어지는 농사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캄보디아 소수민족 농민 가족 이야기 <웰랑 뜨레이> 등. 불 꺼진 객석에서 울고 웃으며, 나는 알려지지 않은 이웃들의 삶 속으로, 혹은 잊고 있던 내 삶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 삶의 이정표를 점검했다.


크고 유명한 영화제들이 많지만, 내게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이 각별히 소중하다. 동시대 감독들의 치열한 실험, 세상을 보는 섬세한 시선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극장을 나온 관객이 일상의 지평을 한 걸음 더 확장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격려하는 힘. 새로운 삶을 꿈꾸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이웃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힘. 그것이 바로 독립 다큐가 가진 힘이고 매력일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독립 다큐만의 ‘마력’일 것이다.


“이루기 쉽지 않은 꿈을 던져주고 실현하지 못하는 관객을 바보로 만드는 그런 영화와 달리, 우리 일상의 모습을 쉽게 풀어놓은 이야기였다. 이게 진짜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영화.”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영화를 본 한 관객이 남긴 말이다. 올해의 ‘인디다큐페스티발’은 막을 내렸지만 다시 보는 방법이 있다. 매월 세 번째 목요일에는 신작 다큐를, 매월 두 번째 수요일에는 이전 상영작들을 만날 수 있다. 연중 열리는 많은 영화제에서 더 많은 독립 다큐들을 만날 수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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