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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노트 #09 - 가면놀이

  



2013.6.12. 가면놀이 : 오른손/펜

 

 

문정현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가면놀이>는 아동성폭력 피해자 가족모임(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 모임)인 '가족의 힘' 엄마들을 통해 아동성폭력 피해자들, 그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매우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성폭력은 페미니즘의 오랜 이슈다. 그렇기 때문에 낡은 이슈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된 지 사반세기가 흘렀다. 언제부터인가 성폭력 피해자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가해자들을 비난하는 방식은 별다른 효과도 설득력도 없는 낡은 이야기가 되었다. 피해를 드러내는 과정과 방식이 오히려 여성을 피해자로 고정시키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비판이 힘을 얻기도 했다. 

물론, 이슈의 낡음과 상관없이 성폭력 사건은 거의 매일 신문과 텔레비전의 단골뉴스로 오르고 있고 경제 위기가 지속되면서 아동성폭력을 비롯한 성폭력은 약자가 더 약한 자를 위해하는 방식으로 그 수위를 높여가며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마디로 이슈는 낡았으나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

나 또한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과정과 방식이 오히려 여성을 피해자의 위치에 고정시키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해 왔다. 그래서 피해자가 얼마나 아픈가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여성들이 성폭력을 이겨낼 수 있는 자기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문정현 감독은 이런 세간의 시선과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정공법으로 성폭력 피해자와 엄마들의 간절하고 아픈 호소에 집중한다. 우직한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미 다 아는 낡은 문제’인 줄로만 알았던 성폭력이란 이슈에 대해 지금껏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무관심했다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논평이나 해왔다는 것을, 새삼스러운 고통으로 직면하게 된다.

한 시간 삼십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 동안 감독은 마치 유능한 외과의사가 메스를 들이대듯, 성폭력이란 이슈에 담긴 무수한 의미들을 하나하나 헤집어낸다. 아동성폭력 피해자의 어머니에 초점을 맞춘 감독의 카메라는 단순한 사건으로서 성폭력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견고한 가부장질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식의 고통을 온몸으로 앓으며 ‘자식 간수도 제대로 못한 어미’라는 비난 속에서 어쩌면 자식보다 더 심각한 피해자가 되어버린 아동성폭력 피해자 지지모임인 ‘가족의 힘’ 어머니들의 증언은, 가부장사회에서 여느 범죄와 달리 피해자가 비난받고 가해자가 보호받는, 도덕 바깥의 범죄인 성폭력의 본질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남편이거나 동네 슈퍼 아저씨거나 교회 목사인 가해자는 잠시 잠깐의 처벌을 통과하면 그만이지만, 피해자와 그 아이의 어미는 평생을 낙인과 비난, 자책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영화의 절반이 모자이크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피해자는 가면 뒤에 숨어서야 간신히 속을 털어놓을 수 있을 뿐이다. 가면 뒤 그녀들의 울음 섞인 증언은 순결 이데올로기와 모성 신화, 가족 내 경제적인 종속관계인 여성의 위치까지 낱낱이 드러낸다.


<가면놀이>를 통해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는다. ‘가족의 힘’ 어머니들이 서로의 상처를 듣고 말하는 과정을 통해 여전한 사회적 낙인 속에서도 살아낼 힘을 얻는 것처럼, 힘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고통을 경청하는 것부터가 시작임을.

영화제 둘째날인 7월 12일 저녁 7시30분에 상영될 예정. 물론 상영 후 문정현 감독님과의 대화도 이어진다.


p.s. 드로잉은 '가족의 힘' 어머니들이 치유의 과정으로 피해 상황을 연극으로 만들어 '가면놀이'를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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