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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집’이란 더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인정 투쟁’ 다룬 다큐 ‘잔인한 나의, 홈’ 관람기




[전국] “우리 사회가 믿고싶지 않은 단어, 친족성폭력. 그러나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친족성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홈’ 쇼케이스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80여 분의 영화 상영 후 감독과 관객 간 대화가 진행됐다. 


친족성폭력이란 친·인척 관계(친아버지를 비롯한 할아버지·의붓아버지·어머니·삼촌·친오빠·사촌오빠 등)에 의해 일어나는 강제적인 성관계를 의미한다. 부산성폭력상담소가 7월 26일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담 받은 765건 중 604건이 지인에 의한 성폭력 피해였고, 그 중 18.7%가 친족성폭력이었다. 친족성폭력 상담건수 중 가해자가 친아버지인 경우는 49.7%로 절반에 가까웠고, 친형제가 18.9%로 그 뒤를 이었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쉬쉬하기엔 이미 통계적으로도 그 심각성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잔인한 나의, 홈’은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돌고래(가명)는 7살 때 친아버지에 의해 성추행을 경험했고, 중학교 때부터 상습적인 강간에 시달렸다. 그러나 오랜 기간 그것을 정확히 뭐라 명명해야하는 지 몰랐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성폭력 예방도서 ‘난 싫다고 말해요’를 발견하고나서야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 아닌 ‘성폭력’임을 각성했다.




8월13일 영화평론가 변성찬씨(왼쪽)와 아오리 감독(오른)이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피해 사실을 가족에 알렸지만, 가해자인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와 동생들도 등을 돌렸다. 아버지는 “절대 그런 적 없다.”며 가해 사실을 부정했고 어머니와 동생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그녀를 몰아세웠다. 심지어 “네가 먼저 유혹하지 않았느냐.”는 의심까지 받게 된다. 가족에게 신뢰받지 못한 그녀는 집에서 쫓기듯 나온 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기관 ‘열림터(성폭력피해자 쉼터)’에 입소한다. 그리고 1심에서 3심에 이르는 법적 투쟁, 나아가 가족들의 신뢰를 되찾고 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나긴 ‘인정 투쟁’이 시작된다.


돌고래의 가족은 왜 그녀를 외면했을까.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을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고, 재판에 증인으로 서서 “오래 봐왔기에 안다.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고 남편을 두둔한다. 할머니, 삼촌 등 친척들 또한 고소를 취하하라는 탄원서를 제출하며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하다. 가해자인 아버지는 ‘가부장(家父長)’이고, 그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야만 ‘정상가족’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관객들은 그녀를 부정하는 가족들의 태도에 대해 놀라워했다. 정형철 씨는 “피해자의 어머니는 딸을 걱정하다가도 끝내 가해자인 남편의 편에 선다. 그러한 감정의 동요가 쉽게 공감되지 않는다. 혹시 ‘소시오패스’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자신을 열림터 활동가라고 밝힌 한 관객은 “실제로 그녀는 피해자의 어머니로서 딸을 걱정하다가도 다시 가해자의 아내로서 ‘네가 먼저 유혹하지 않았느냐’며 돌고래를 몰아세웠다. 그러나 그녀는 소시오패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해자의 아내이자 피해자의 어머니, 그리고 가정이 파괴될까 두려워하는 가족구성원, 이 모든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이라는 것이다. 열림터 활동가는 “이 복잡한 지점을 이해해야만 친족성폭력에 대해 받아들이고 대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족성폭력 피해자 돌고래 씨는 가족들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집에서 나와야만 했다. 그녀에게 ‘집’이란 더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사진=배급사 시네마달)


영화를 제작한 아오리 감독도 피해자의 당시 심정과 현 세태에 대해 말했다. 아오리 감독은 “돌고래는 자신의 어머니, 나아가 가족 구성원들이 믿어주지 않는 데 대해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어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가족들을 지키려 했다. 돌고래는 이기고자 한 게 아니다. 그녀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호하고자 재판에 임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녀의 어머니가 돌고래를 믿어줬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친족성폭력, 특히 아버지가 가해자인 경우 많은 어머니들이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가족이 그녀를 믿지 않았다. 그녀 또한 가족을 믿을 수 없어졌다. 법원은 1심에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에 무죄를 선고했다. 점점 더 누군가를 믿기 힘들어졌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녀는 거듭 말한다. “이제 믿고 싶어. 제발, 사람을 믿고 싶어.”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상담소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을 위해 증언해줄 사람들을 찾고 재판을 진행시켜나갔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친구들, 검사와 판사 등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믿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2012년 2월 16일 2심 판결. 법원은 친족성폭력을 인정했다. 피고인, 즉 그녀의 아버지에 유죄를 선고하고 징역 7년형을 내렸다.




가해자인 아버지가 2심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날, 재판이 끝난 후 돌고래씨가 법원 구석에서 울고 있다.(사진=배급사 시네마달)


그러나 그녀는 결코 기뻐하거나 후련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재판이 끝난 뒤 법원 한 구석에서 열림터 봉사자들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엄마 어떡해.”를 되풀이하면서. 돌고래는 어떤 마음으로 눈물을 흘린 것일까. 영화평론가 변성찬 씨는 “그녀가 진정 원한 것은 아버지에 대한 법적 처벌이 아닌, 가해자의 인정과 사과, 주변인들의 신뢰였기 때문”이라며 “그녀의 가족은 이후에도 가해자의 죄를 끝끝내 부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돌고래의 가족은 2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출했지만 3심에서 기각됐다. 변성찬 씨는 “법적으로는 승소했지만 그토록 바라던 인정과 사과는 쟁취하지 못한 딜레마를 껴안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홈’은 작위적인 해피엔딩을 거부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 돌고래는 재판이 끝난 뒤 열림터 생활을 마치고  2년 만에 독립했지만 ‘원가족’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의 가족은 명절날에도 그녀의 방문을 거절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돌고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찾았다고 말한다. 작품 속 돌고래는 “살아있는 것 같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눈앞이 깜깜해서 스스로를 죽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1~2년 후와 10년 후의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아오리 감독은 돌고래가 긴 싸움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주변인의 지지’를 꼽았다. 아오리 감독은 “3년간 평정심을 갖고 재판에 임한 점은 정말 대단하다.”며 “열림터 활동가 등 주변인들이 그녀를 믿고 지지해주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돌고래씨가 명절날 원가족의 집 근처에서 배회하고 있다. 가해자인 아버지가 법적 처벌을 받고 징역을 살고 있지만, 피해자인 돌고래씨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는 친구가 있다.(사진=배급사 시네마달)


친족성폭력. 우리는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해야 할까. 우선, 친족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해볼 필요성이 제기됐다. 열림터 활동가는 “가해자에 대한 이미지가 잘못 형성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에서 ‘아빠는 짐승이었다’ 따위의 자극적인 문구가 강조되고 그들을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로 묘사한다. 친숙한 사람보다는 ‘낯선 괴물’에 가까운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는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 속 가해자와 피해자 간 관계를 상상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돌고래의 아버지도 평소 성실한 사회인, 존경받는 아버지로 살아왔다. 그러나 2심 판결에서 담당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은 평소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등 모범적인 아버지상을 보여왔지만 이면에서는 딸을 성폭행하는 이중성을 가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열림터 활동가는 “때문에 돌고래의 아버지가 ‘건강한지 확인해봐야겠다.’며 접근했을 때, 그녀는 ‘평소 현명한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으므로’ 아무 의심도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족성폭력 가해자는 ‘낯선 괴물’이 아닌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감독과 관객들은 교육의 중요성과 주변인의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한 관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겠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밝혀졌듯 자신의 가족에게 성적 긴장감과 욕망을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조카의 필통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서 탈의 영상을 찍고 유포하는 경우도 봤다.”며 친족성폭력 예방법에 대해 질문했다.




피해자인 돌고래씨는 명절날 가족들로부터 방문 거부 의사를 전해듣고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사진=배급사 시네마달)


아오리 감독은 “뻔한 말이겠지만 교육이 중요하다. 실례로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중학생인 오빠가 가슴을 만져보려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가 오빠를 아주 엄하게 체벌했다. ‘그건 잘못된 거야!’라면서. 가족 간 성범죄는 실상 빈번하게 일어나므로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을 돌고래의 동생과 같은 입장이라고 밝힌 관객도 있었다. 그는 “가정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서 침묵해왔다. 가정을 지키고픈 마음과 형제를 위해 진실을 밝혀주고픈 감정이 충돌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오리 감독은 이에 “침묵했다고 자책하지 말라.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어떤 폭행에 있어서 우리는 본인에 관한 예방법만을 배워왔다. 피해자의 주변인으로서의 대처방법에 대한 교육은 받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그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다. 주변인들 또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말했다. 감독은 또 “이야기를 공론화하는 것이 가족을 해체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시간이 흐를수록 상처는 곪고, 결국 터진다. 다 함께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정책기자 최아란(프리랜서) sessky3909@gmail.com 





작품정보


잔인한 나의, 홈 아오리|2013|77min

우연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친족성폭력 피해자였다.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녀는 쫓기듯 집에서 나와야 했다. 그리고 집에 남아있는 동생들을 위해 가해자를 고소하게 된다. 나는 아무도 믿고 싶지 않는 그녀의 이야기를 <잔인한 나의, 홈>이라는 잔혹한 동화로 그리고자 한다.


*'공동체상영' 문의는 독립영화 배급사 '시네마달'(02-337-2135 / cinemadal@cinemadal.com)로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