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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사랑하지만 육식을 끊을 순 없다?






황윤·김영준 부부 이야기


▶ 야생동물과 그 터전에 관심이 많은 이들 열댓명이 모여 2000년 3월 ‘야생동물 소모임’(야소모)을 만들었습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땐 동물 관련 일을 하지 않는 평범한 직장인, 생활인들도 많았지만, 이들은 10여년간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전문가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국내 내로라하는 환경·생태 전문가들이죠. 황윤 영화감독과 김영준 수의사 부부는 이 모임에서 ‘임도 보고 뽕도 딴’ 사례입니다.


엄마는 환경과 생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영화감독, 아빠는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는 수의사다. 아주 ‘친환경’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여섯살 도영이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역사박물관 뒤뜰 정원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황윤 영화감독은 인터뷰 내내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도영이의 활동반경은 금세 황 감독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럴 때마다 황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을 찾아나서면, 아빠인 김영준 수의사(국립생태원 야생동물구조팀장)와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잠시 뒤 황 감독이 비둘기들과 놀고 있던 도영이를 데려왔다. 도영이는 “비둘기가 배고파서 돌아다니고 있어”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래서 도영이가 먹을 거 찾고 있었어?”라고 물었다. 도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영이가 부모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 물었다. “도영이가 동물에 관심이 많죠?” 황 감독이 답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개미나 지렁이를 죽이면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화를 내요. 또래에 비해선 야생동물 이름도 많이 알죠.”



동물원에 관한 영화 찍으면서 만난 인연


이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최근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공개됐다. 영화의 이름은 <잡식가족의 딜레마>, 공장식 축산시스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채식을 시작한 황 감독이 육식을 포기하지 않는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 문제를 영상에 담았다. 영화는 사회적인 고민을 자전적인 형식으로 풀어냈다. 돈가스를 좋아하던 황 감독은 돼지의 처참한 생활환경과 구제역에 걸려 살처분되는 광경을 보고서 ‘고기’를 끊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자신의 식성을 빼닮은 아들은 고기반찬을 찾고, 남편은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할 권리’를 주장한다.


사실 남편 김 수의사의 동물사랑은 황 감독 못지않다. 그는 자신의 식사보다 자신이 구조하고 치료하는 야생동물이 잘 먹는지를 더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조차도 “인간은 원래 잡식동물”이라며 육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도영이는 아빠가 황조롱이와 고라니를 치료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엄마가 카메라를 들고서 돼지농가를 찾는 길을 동행한다. 엄마가 찾아낸 생태적인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소규모 농장에서 아기 돼지와 마주하기도 한다. 동물을 바라보는 도영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고스란히 화면에 담겼다.


황 감독과 김 수의사는 2005년 결혼했다. 둘이 만나게 된 것도 황 감독이 ‘동물원’에 대한 영화인 <작별>을 찍으면서다. 황 감독은 영화를 찍으며 김 수의사에게 자문을 했다. 황 감독은 여러 우연이 겹쳐 김 수의사와 만났다고 했다.


“사실 영화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대학에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통신 대기업에 취직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영업을 했어요. 만 1년을 채우고 바로 그만뒀죠. 그러고서 쉬던 중에 우연히 <씨네21>의 ‘영화워크숍’ 광고를 보고서 참석했어요. 그때부터 영화인들을 만나고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했고,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등의 영화들을 접하고서 다큐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2000년 동물원에 대한 다큐 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정작 동물과 생태·환경 등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막막했죠. 무작정 녹색연합에 전화했더니, ‘야생동물 소모임’(야소모)이란 곳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며칠 뒤 동물원 분야의 전문가인 서울대 수의학과 이항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갔어요. 그 연구실 구석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남편을 만났고, 알고 보니 그이도 ‘야생동물 소모임’ 회원이라는 거예요.”


황 감독은 바로 야생동물 소모임에 참석했다. 그가 참석한 첫 모임은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를 보기 위한 현장답사였다.


"도시에 살던 제가 처음 접하는 야생의 현장이었죠. 그리고 망원경으로 새를 관찰할 때 김영준씨가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을 해줬어요. 그래서 사귀게 됐어요. 그땐 친절한 줄 알았는데….(웃음)”


김 수의사도 바로 말을 받았다. “제가 친절한 성격은 아니죠.”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보면 알지만, 김 수의사의 성격은 친절한 편이 아니다. 오히려 다소 까칠하고 반항적인 ‘나쁜 남자’ 캐릭터다. 하지만 그도 다친 야생동물을 만나면 눈빛이 변한다. 동물을 치료하고 회복하고 야생에 복귀할 때까지 노심초사하며 보살핀다. 동물이 야생으로 돌아가도 그의 걱정은 멈추지 않는다. 김 수의사가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보살핀 이야기들은 2012년 5월부터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웹진 ‘물바람숲’에 연재됐다.


김 수의사는 어떻게 야생동물을 돌보게 됐을까.


“어릴 적엔 막연히 동물을 좋아했는데요. 나이 먹어가면서 동물 관련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직업이 마땅치가 않았어요. 그래서 수의사를 택했죠. 처음엔 소, 말 등 큰 동물을 연구하는 전공이었지만, 해외봉사를 다녀오면서 동물 중에서도 소외된 약자인 야생동물을 돌보고 싶어졌어요. 국내에 돌아와선 순천만의 한 동물병원에 머물며 다친 야생동물을 돌봐주곤 했어요. 그때 서울대 이항 교수를 만났습니다.”


이 교수는 국내 동물원을 동물들이 생태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종 보존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 연구에 김 수의사의 동참을 요청하러 2002년 전남 순천으로 직접 찾아온 것이다. 김 수의사는 처음엔 “동물원은 관심없다”며 버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물원이 좋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이 교수의 뜻에 따랐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역사박물관 뒤뜰에서 함께한 황윤·김영준씨 부부와 아들 도영이. 윤형중 기자

<어느날 그 길에서>의 충격적인 로드킬 실태


황 감독이 남편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덧붙여 설명을 드리면 이 사람은 순천만의 한 동물병원에서도 정식 직원이 아니었고, 그냥 혼자서 야생동물을 나서서 돌본 거였어요. 이항 교수와 동물원 일을 하면서도 혼자 전국에서 야생동물이 다쳤다는 얘기를 들으면 연구실로 데려와 치료를 했어요. 공간도 넉넉지 않은 연구실에 간이침대를 놓고 생활했죠. 저는 그런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그렇게 불모지였던 야생동물 치료 분야를 개척했고, 2004년부터 줄기차게 환경부에 다친 야생동물을 저렇게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오랜 노력 끝에 2010년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전국 12곳에 생겼고, 충남구조센터의 팀장으로 갔죠.” 김 수의사는 올해 초 국립생태원의 야생동물구조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황 감독은 2004년 사라져가는 야생동물에 대해 다룬 <침묵의 숲>, 2006년 지리산을 둘러싼 차도에서 숨져가는 야생동물의 실태를 담은 <어느날 그 길에서>를 제작하며 야생 다큐 3부작을 완성했다. 특히 <어느날 그 길에서>에 나오는 로드킬의 실태는 충격적이었다. 영화에 나온 연구팀은 30개월간 지리산 인근 120㎞ 도로에서 총 5769건의 로드킬을 발견했다. 올해 개봉하는 <잡식가족의 딜레마>에선 황 감독이 오랜 육아로 놓았던 카메라를 들고서 공장식 축산의 실태와 생태적인 소규모 농가의 현장을 대비해 촬영했다. 황 감독은 영화에서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그저 질문을 던질 뿐이다. 우리가 동물과 공존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김 수의사도 다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마찬가지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남편에게 아내를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황 감독은 “그래, 자기도 나에 대해 좀 얘기해봐”라며 거들었다. 김 수의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환경에 대한 독립다큐도 야생동물처럼 마이너 중의 마이너잖아요. 고생을 찾아서 하고 있죠.”


아내의 돌직구가 이어졌다. “어이구. 남말 하고 있네.”


황 감독과 김 수의사는 앞으로 부부의 이름을 함께 걸고서 <한겨레> 토요판 생명면에 격주로 칼럼을 연재한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