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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말 못하는 짐승의 ‘워낭소리’ 는 내레이션보다 강했다

원문보기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2/10/200902100342.asp
팔순 농부와 마흔살 소의 동행다룬 다큐 잔잔한 감동…
막장드라마 홍수 속‘오아시스’

한국 독립영화사상 각종 기록을 새로 쓰는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는 ‘막장 드라마’의 홍수 속에 놓인 우리 사회에 각별한 의미를 던져준다.

사이코패스류 연쇄살인사건과 용산 화재 참사 등 드라마보다 더욱 꼬인 현실을 사는 대중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억지 설정 투성이인 막장 드라마나 현실을 완전히 잊게 해주는 판타지를 좇게 마련이다. 불륜과 복수극을 롤러코스터 같은 속도로 진행시키는 ‘아내의 유혹’과 럭셔리한 꽃미남의 삶을 그리는 ‘꽃보다 남자’가 유독 인기를 얻는 이유다.

하지만 ‘워낭소리’는 거짓이나 술수, 잔꾀를 모르는 정직한 노동과, 농부와 소 사이의 진정어린 소통을 통해 작지만 가슴 뭉클한 위안을 준다.

디지털 문화와 속도전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의 소중함도 함께 보여준다. 최 노인은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수작업만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9남매를 키웠고, 불편한 한쪽 다리를 끌며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른다. 소에게 해가 갈까 논에 농약도 치지 않는 고집쟁이다. 평균수명의 배 가까운 마흔 살이나 먹도록 소를 살게 한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자연스레 느끼게 해준다.

소 역시 늙어 제대로 서지도 못 하면서 최 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고 나른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 둘은 모두가 인정하는 환상의 콤비요, 베스트 프렌드다.

둘은 많이 닮았다. 아니 같다. 땔감을 지고 걷는 할아버지의 앙상한 다리와 늙은 소의 마른 다리의 완보가 포개지는 장면은 그것을 말한다. 느리지만 정직하게 목표에 도달하는 삶이 가치 있는 것임을 웅변한다.

최 노인 내외의 따뜻한 겨울나기용 땔감을 잔뜩 져 나른 어느날 마지막 숨을 내쉬며 죽는 소. 30년을 부려온 소와의 이별 형식은 “좋은 데 가라이”라는 최 노인의 한마디다. 그럼에도 백마디 말보다 진한 감동을 주고도 남는다.

희미한 워낭소리는 귀가 밝은 도시의 현대인들에겐 잘 들리지 않지만 귀가 어두운 최 노인은 어김없이 알아차린다. 빠름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주는 경종이다. 급하게 조성된 경쟁과 개발논리로 대중의 삶이 붕괴되고 인간성이 왜곡되곤 하는 우리 사회에 ‘워낭소리’는 돌아가는 전략과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워낭소리’는 막장 드라마 속의 오아시스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