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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현실 각성제 <살기 위하여>


글 : 이영진
| 2009.04.15

synopsis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 간척사업으로 육지로 편입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지금껏 계화리 사람들은 섬사람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바다와 갯벌에서 삶의 양식을 제공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바람조차도 이제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15년 동안 줄기차게 반대했던 정부의 새만금 간척사업이 마무리되면서, 물길은 막혔고 갯벌은 말랐다. 간척사업 완공을 위해 정부는 용역깡패까지 투입하고, 터전을 잃고 불안에 사로잡힌 주민들은 해수유통과 보상을 주장하는 편으로 나뉘어 다툰다.

계화도는 새만금이 됐고, 터전은 무덤이 됐다. 바닷물 먹지 못해 생합은 제 살 드러내고 죽었다. 조개 건져 올리며 환호성 지르던 어민은 마른 갯벌에 쏟아낸 물에 쓸려 숨을 거뒀다. “그것도 생명이고 우리도 생명, 살아 있는 생명들을 물을 못 먹여 죽(이)는게 너무 잔인하잖아.” <살기 위하여>는 죽음을 응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연다. 생합과 어민의 죽음은 다르지 않다고, 이 생명들의 죽음은 자본의 욕망이 빚어낸 타살이라고, <살기 위하여>는 시종, 거듭 말한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수많은 당신(들)에게도 묻는다. 죽음의 절규를 외면하고 침묵으로 방조하지 않았느냐고.

‘군산, 김제, 부안을 연결하는 33km의 방조제’를 쌓아 ‘여의도의 140배 면적의 농지를 만들겠다’는 새만금 간척사업. “15년 동안”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사 구간은 2.7km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살기 위하여>의 계화리 주민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대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주고, 대책위원회가 정부와 보상금을 놓고 협상하려 들고, 정치인들이 부자동네가 될 것이라며 거짓말하고, 언론이 서둘러 카메라를 거두고, 환경단체들 또한 뒤따라 상경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해수유통만이 살길이라며 싸운다. “먹여살려 달라”고 하소연 한번 해본 적 없는데 왜 우릴 짓밟느냐며 항변한다.

<살기 위하여>는 경고의 다큐멘터리다. 정부의 장밋빛 약속이 새빨간 거짓임을 드러내고, 새만금 싸움은 끝났다는 이들에게 변명 그만하라고 충고한다. “새만금 중단하면 미래가 보인다”는 문정현 신부의 탈진한 목소리와 “생합 잡는다는데 왜 가두고 난리냐”는 계화리 할머니의 외마디 목소리는 아직 시효가 다하지 않았다. 개발과 경쟁의 논리를 내세운 자본과 국가의 폭력 앞에서 새만금은 비단 전라북도의 일이 아니다. 제2, 제3의 새만금을 꿈꾸는 ‘썩어죽을’ 자들이 있는 한 누구나 타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3년 전에 제작됐지만, <살기 위하여>가 들려주는 절규는 여전히 끔찍한 현실 각성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