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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위, 또 사고쳤다! 독립장편 <고갈> 제한상영가
[뉴스메이커] 영등위 등급분류 또다시 논란... 독립영화 탄압인가


독립영화계의 스타감독인 김곡 감독의 독립 장편영화 <고갈>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사실상 개봉이 불가능하게 됐다.

김곡 감독과 영화의 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는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측은 극장 개봉을 위해 지난 16일 영등위에 심의를 신청했으나 '주제, 선정성, 폭력성, 대사, 모방 위험' 등 모든 면에서 '높음'과 '아주 높음' 평가를 받아 30일 제한상영가 등급을 통보받았다. 이로써 <고갈>은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의 멕시코 영화 <천국의 전쟁>과 서원태 감독의 <씽킹블루>에 이어 올해 들어 세 번째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가 됐다.

영화 <고갈>,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개봉 불가

영화 <고갈>은 공장지대 근처를 배경으로, 한 남성이 한 여성을 지배하고 매춘을 시키며 전개되는 기괴한 관계를 그린 작품으로, 이들의 관계는 이후 중국집 배달원 여성이 개입하면서 충격적인 파국을 맞는다. 영등위 측은 "영상의 표현에 있어 선정적인 묘사가 수간 등을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묘사하며 변태적 성욕 자극만을 추구하는 표현이 있고, 대사 및 주제, 폭력성 부분에 있어서도 청소년에게는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이 영화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고갈>은 작년 서독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올해 초 <똥파리>와 함께 로테르담영화제에 나란히 출품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최근에는 뉴욕시라큐스영화제에 초청돼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3개 부문의 상을 휩쓸면서 명실공히 독립영화계의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극단적이고 불쾌한 이미지와 서사로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마다 격렬한 반응을 얻어냈으며, 실제로 상영 도중 극장을 박차고 나간 관객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들과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광기와 고갈을 형이상학적으로 풀어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나아가 한국 독립영화계가 거둔 최근 가장 큰 수확 중 한 편이라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 최근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고 사실상 개봉이 불투명하게 된 김곡 감독의 독립 장편영화 <고갈>의 한 장면.

청소년 위한다는 제한상영가 등급, 실질적으로는 '검열'

제한상영가 등급 영화는 지정된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하고 광고 등에 있어서도 제한을 받게 되지만, 현재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에 이 등급을 받으면 영화의 개봉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영화계가 오랫동안 제한상영가 등급에 거세게 반발해온 것 역시 제한상영가 등급이 결과적으로 사전 검열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 헌법재판소에서도 지난 2007년 제한상영가 등급이 포괄위임 금지 원칙과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하여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실제로 과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던 <천국의 전쟁>과 <숏버스>의 경우 오랫동안 상영이 불가능해 법적 소송을 벌인 바 있으며,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정 이후 <숏버스>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 취소 처분을 받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올해 극장에서 정식 개봉했다. 이후 영화계에서는 제한상영가 등급 폐지, 완전등급제 실시 등을 원칙으로 하는 영비법 개정을 요구해왔으며 인권운동사랑방 등 시민단체에서는 등급분류를 거부할 권리를 포함한 좀더 진보적인 방향의 영비법 개정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영등위 측은 폐지하는 대신 기준을 명확히 하여 제한상영가 등급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영비법 개정을 추진해왔고, 결국 지난 4월 제한상영가 등급분류 기준을 명시한 영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005년 칸영화제에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천국의 전쟁>은 과거 두 차례에 걸쳐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고 올해 다시 재심의를 신청했으나 지난 5월 또 다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으며, 남녀간 소통불가능성을 포르노그라피에 빗대어 표현한 서원태 감독의 <씽킹블루> 역시 작년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임에도 올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사실상 개봉이 금지됐다.

"한국에서 예술하기 정말 힘들다"

<고갈>이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개봉지원작으로 선정된 만큼, 영화를 연출한 김곡 감독은 이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 직접 자신들의 창작집단 이름인 '영화집단 곡사' 명의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의욕적으로 개봉을 추진해왔으며, 이 작품에 대상을 안겨준 서독제 역시 9월 개봉을 목표로 발벗고 나서서 마케팅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독제 측은 <고갈>의 개봉 추이를 지켜보면서 이후 영화제 수상작 및 상영작들에 대해서도 직접 배급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려던 계획이었으나, <고갈>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으면서 이러한 계획 역시 사실상 불투명해졌다.

김곡 감독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한민국에서 예술하기 정말 힘들다"며 농담을 섞어 심경을 토로했다. "이 영화는 어차피 많은 관객들이 좋아해줄 영화는 아니며, 그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몇백 명, 몇천 명이라도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개봉을 추진한 것인데 일이 이렇게 됐다"며 유감을 전했다. 또한 "이 영화가 유해하다고 하는데, 오히려 해롭다는 것을 보여주고 반성하는 영화다, 대체 무엇에 대한 모방위험이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곡 감독은 "재심의를 위해 영화에 일부 수정을 가하긴 했지만, 절대로 영등위가 원하는 방식으로 수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굴욕적인 모자이크 따위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은하해방전선>을 연출한 바 있는 윤성호 감독은 이 사태에 대해 "좋든 싫든 왈가왈부하려면 상영의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 아닌가. 애초 상영을 막는 것은 영화를 지지할 권리는 물론 이 영화를 보고 싫어한 사람들의 '씹을 권리'조차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등위 등급분류 논란 올해 들어서만 수 차례...
이젠 영등위까지 나서서 독립영화 탄압하나

영등위의 등급분류와 관련해 벌어진 논란을 올해에 들어서만도 벌써 수 차례다. 영등위는 올초 <작전>이나 최근 <여고괴담 5>에 대해 애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매겼다가 재심의를 거쳐 수정본에 15세 관람가 등급을 내주었고, 최근 <반두비>에 대해서는 재심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내린 바 있다. 한편으로는 <트랜스포머 2>에 12세 관람가 등급을 내리거나 성기노출 장면이 있는 <박쥐>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내주며 유연성을 보이다가도, 모호하기 짝이 없는 '청소년 모방 위험'을 들며 지나치게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 일관성이 없이 자의적 기준을 사용한다는 것이 영화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영등위가 최근 들어 급격히 보수화하며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그간 논란이 된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해서는 영등위 관계자가 여러 자리에서 수차례에 걸쳐 "제한상영가 등급은 우리도 매우 신중하게 매겨왔다, 제한상영가 등급이 신설된 이래 수년간 이 등급을 받은 영화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라며 말해왔으나,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림으로써 그러한 변명을 스스로 무색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아가 영등위의 이런 등급분류 논란이 결과적으로는 독립영화에 대한 탄압이자 재갈 물리기라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독립영화가 80년대부터 검열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다 검열이 형식상으로 폐지되면서 이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고민하는 지금, 이같은 사태는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퇴행이라는 것. 독립영화들이 주류영화들이 잘 다루려 하지 않는 소재를 다루거나 파격을 단행하는 경우가 잦은 만큼, 등급심의에 있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도 결국 독립영화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워낭소리>와 <낮술>, <똥파리>를 계기로 확산된 독립영화에 대한 기대와 환호는 결국 '상업적 성공'에만 기댄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독립영화에 지원은커녕 전방위적인 재갈물리기가 진행중이라는 주장도 있다. <후회하지 않아>를 만들었고 <탈주>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이송희일 감독은 "영진위와 문화부, 나아가 영등위까지 이제 독립영화에 재갈을 물리려 들고 있다. 올해 독립영화계가 거둔 최고 수확에 속하는 <반두비>와 <고갈>이 나란히 등급심의에서 이같은 일을 당한 것은 독립영화계에 대한 의도적인 탄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숙현 기자